지방군벌의 무자비한 학살로 유례없는 57명의 정치테러 희생자가 나오면서 필리핀 정부의 통치력 부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방을 군벌이 지배하는 무법천지로 방치한 정부가 사건의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필리핀 당국이 26일 사건 배후로 지목된 남부 민다나오섬 마긴다나오주 주지사의 아들 안달 암파투안 주니어 밑에서 일하는 수 명의 민병대원을 테러용의자로 체포했지만 정작 몸통은 건드리지도 않고 있다. 제수스 베르조사 경찰국장은 25일 한 방송에 출연, "곧 암파투안 주니어의 신병을 확보해 수사에 응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필리핀 스타지는 "암파투안의 해외 도피설이 나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욱이 경찰이 초기수사에서 미적대는 사이 "대부분의 테러용의자들은 산악지역으로 도피했다"고 AFP는 전했다. 23일 테러 자행 당시 암파투안 소속의 민병대원 100여명이 투입돼 정적인 망우다다투 지지자와 기자 등 희생자들을 덮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국은 사건배후를 밝히는 데도 갈팡질팡했다. 당초 레오나르도 에스피나 경찰 대변인은 탐문수사를 통해 암파투안 주니어를 핵심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내 "아직 뚜렷한 증거가 없기에 앞서 한 말은 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날 정부 보안군이 무법천지의 민다나오섬에 투입되고, 아로요 대통령의 라카스 캄피당은 암파투안 주니어 등 암파투안 족벌 출신 세 명을 제명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민심은 들끓고 있는 상황이다. 필리핀대학 정치학과 프로스페로 드 베라 교수는 블룸버그에 "정부대응은 너무도 느리고 당황스럽다"고 분개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정부 통치력 부재로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군벌싸움의 연장선에 있다. 필리핀 데일리인콰이어러에 따르면 2007년 선거 당시는 후보와 지지자 등 126명이 2004년 선거에는 186명이 사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사설에서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가장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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