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묻혀 존재감을 알 수 없었던 나를 찾기 위해 글러브를 다시 끼었습니다."
46세의 중년 남성이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에서 챔피언벨트를 거머쥐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충남 천안시 쌍용3동에서 통장을 맡고 있는 홍영규(오른쪽)씨.
홍씨는 지난 주초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 열린 한국권투인협회(KBI)가 주관한 제6회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에서 7전 6승1패의 전적으로 미들급 챔프와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홍씨는 결승전에서 자신보다 3살 어린 선수를 상대로 1회 1분20초 KO승을 거둬 챔프에 등극했다.
비록 생활체육이지만 복서 나이로 환갑을 훨씬 넘긴 그가 링에 오른 것은 자신을 증명하려는 싱그러운 꿈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홍수환선수가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을 보고 챔프의 꿈을 키웠다. 고교시절 복싱에 입문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도포기 했다.
30년 가까이 복싱에 대한 향수를 묻어뒀지만 2년 전 우연히 들른 천안의 한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복서들을 보고 불현듯 글러브를 다시 꼈다. 복싱을 다시 시작한지 1년 반 만에 대회일정이 잡혔지만 어느덧 굵어진 허리와 불룩한 배가 문제였다.
학창시절 라이트급을 유지했던 몸은 미들급으로 올리고도 계체 통과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주먹은 녹슬지 않았다. 승리를 거둔 6승 모두 KO로 끝내 '돌주먹'이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결승을 앞두고 위기가 닥쳤다. 천안시 산림보호원 일을 하는 그는 지난달 6일 산불감시를 하러 나갔다가 왼쪽 무릎인대와 관절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이 때문에 로드워크 조차 한 달이 넘게 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특기인 스피드를 활용한 공격을 포기하고 오른손잡이지만 왼손복싱으로 전략을 바꾼 끝에 승리를 일궈냈다.
내년 2월 방어전 준비에 들어간 홍씨는 26일 "복싱은 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자신감을 주는 멋진 스포츠"라며 "나를 찾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사는데 묘약이 되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권투예찬론을 폈다.
이준호 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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