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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디자이너 이광희, 아프리카에 심는 희망의 망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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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디자이너 이광희, 아프리카에 심는 희망의 망고나무

입력
2009.11.2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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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러도 망고 열매를 달게 먹을 아프리카 아이들 생각을 하면 '아이고 신나라' 하게 되요."

과로로 목이 잠긴 상태였지만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씨의 말에는 열기가 넘쳤다. 27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한 희망의 망고나무 자선 패션쇼' 탓이다.

이씨는 올해 기어코 일을 치고 말았다. 호기심에 3월 월드 비전 홍보대사인 배우 김혜자씨와 동행한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Tonj) 지역 방문길에서 여생의 업을 만났다. 평소 해외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굳이 다른 나라까지 신경 쓰나'라고 했지만 내전의 희생자들인 피란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톤즈 지역에서 그런 냉철함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망고 열매 때문이었어요. 김혜자씨가 촬영하는 동안 저는 기념품이라도 살까 하고 시장에 갔었는데 여인네들이 좌판에 푸르딩딩한 열매 서너 개 달랑 올려놓고 파는 거예요. 망고더라고요. 농사가 불가능한 황무지에서 굶주림이 일상이 된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망고나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계시를 받은 느낌이 들데요. '이게 내 몫이구나' 하는…."

망고나무는 척박한 사막기후에서 잘 자랄 뿐 아니라 1년에 2번 열매를 맺는다. 특히 첫 열매를 수확하는 5월은 굶주림이 절정에 달하는 춘궁기여서 주민들에게 대체식으로 제공할 수 있다. 수령이 늘수록 열매도 많이 달려 주민들에게 수익 창출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문제는 1그루당 15달러(2만원 남짓)인 묘목 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주민들이 거의 없다는 현실. 이씨는 수단에서 돌아오자 마자 '희망의 망고나무를 심자'는 모토 아래 톤즈 지역 주민들에게 망고 묘목을 제공하고 재배 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을 벌이기로 작정했다. 묘목 구입비는 자선 패션쇼를 통해서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씨의 뜻이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패션쇼 참석 의사를 밝혔고, 건축 디자인을 하는 최시영 리빙 액시스 대표, 브랜드 디자인을 하는 정일선 소디움 파트너스 대표, 안동민 인터그램 대표, 편집 디자인을 하는 이나미 스튜디오 바프 대표 등이 희망의 망고나무 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1회성 기부는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 아래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18일에는 ㈔희망의 망고나무(이사장 이광희)도 창립했다. 월드 비젼은 망고 묘목을 일정 기간 키우고 주민들에게 묘목 재배법을 교육하는 데 힘을 보태기로 했다. 절친한 사이인 김혜자씨는 "나는 10년을 수단에 가도 보지 못한 걸 단 한번에 포착해 냈다"고 칭찬했다.

27일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펼치는 패션쇼의 주제는 '망고의 전설(Legend of the mango)'이다. 헐벗고 굶주렸을지언정 순박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수단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발레리나복 스타일의 플레어 드레스, 사막의 모래를 연상시키는 반짝이는 비즈 드레스, 낭만적 감성이 돋보이는 나리 라인 드레스 등 모두 65점의 오트쿠틔르(고급 맞춤복) 의상이 무대에 오른다. 이씨는 이번 행사 수익금으로 약 3,000그루의 망고 묘목을 현지 주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평생 패션 디자이너로 화려하게만 살다 뒤늦게 철든 기분이에요. 누군가에게 엄마가 될 때 가장 행복하듯이 단돈 2만원이면 아프리카의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척박한 황무지가 망고 열매 주렁주렁 매달린 숲으로 뒤덮이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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