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인천공항에 간다. 공항 로비의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본다. 수없이 많은 항공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같이 비상하는 상상을 즐기는 것이다.
늦게 뜨는 게 멀리 간다
항공기들이 이륙하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가속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공중으로 치솟는 항공기가 있는가 하면, 활주로 거의 끝까지 내달린 후에야 비로소 완만히 일어서는 항공기가 있다. 비교적 근거리를 오가는 덩치 작은 항공기는 가속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륙에 성공하지만, 대양을 건너고 대륙을 횡단하는 점보 여객기는 3백 명이 넘는 승객과 엄청난 양의 연료를 싣기에 이륙이 늦을 수밖에 없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사법시험에 낙방했다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얼굴을 하고 연구실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했는데요'라며 울상 짓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그럴 땐 점보여객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네가 근거리 기종이 아니라 장거리 기종일 거라고 말이다. 전속력으로 달려도 이륙에 성공하지 못하는 항공기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사람, 젊어서 배우자를 잃은 사람, 그리고 뜻밖에도 소년 급제한 사람이라고 한다. 앞의 두 부류는 알겠는데, 일찍 과거 급제한 사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지 못한 자들의 궤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휠체어를 타는 장애 학생과 함께 설렁탕 집에 간 적이 있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휠체어를 뒤에서 밀고 식당 입구로 향하는데, 웬 자동차가 앞에서 헤드라이트를 쏘아대며 출입문에 바짝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오는 것을 보고도 출입문에 붙여 세운 차에서는 건장한 청년과 중년여성이 내렸다. 장애인은 고사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끔찍한 가족사랑인 셈이다.
매우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일행과 앞뒤로 앉게 되어 본의 아니게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젊은 아들은 대학신입생으로서 무슨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는 대학생 아들에게 운동선수 감독처럼 최연소 합격을 위한 전략을 짜며 연신 구체적인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뜨거운 국물보다도 얼굴이 더 화끈거려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장애인을 제치고 식당에 먼저 들어가는 그런 사람이 판사나 검사가 되면 어떻게 되겠나 하는 생각에 불편하였다.
소설 <레미제라블> 에서 평생 장발장을 뒤쫓은 자베르 경감은 '그는 법률의 포로였지만 나는 법률의 노예였다'고 독백하며 세느 강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틋한 감정이 없는 법률가는 법률의 노예나 기계가 되기 쉽다. 그런데 놀랍게도 애틋한 마음(compassion)은 시련과 실패에서 나온다. 레미제라블>
낙방자들에 더 큰 위로를
엊그제 1천여 명의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명단이 발표되었고 여느 해처럼 수석과 최연소 합격자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력 끝에 목표를 성취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보다 몇 십 배 많은 낙방자들에게 더 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P군, 자네가 이번에 실패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자네 기종은 점보여객기인 것 같네. 장거리를 뛰는 기종은 도움닫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이륙하면 여간 비바람에 요동치 않고 목적지까지 순항할 걸세. 시련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변론할 수 있겠는가.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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