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까지 11시간, 거기서 다시 비행기로 4시간, 환승 시간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는 여정이었다.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소박하고 정겨운 야경이 멕시코시티의 첫인상이었다. 마천루들과 강렬하고 화려한 불빛이 아닌 검은 여백을 살리며 떠 있는 주황색 불빛들은 치안 부재와 부패로 이름 난 멕시코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신축한 멕시코시티 공항 제2 터미널은 깨끗했다. 입국하는 이들과 마중나온 이들로 부산한 가운데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아기가 눈에 띄었다. 형과 누나인 듯한 아이들이 그 뒤를 쫓아다녔다. 아버지는 가죽 점퍼로 멋을 낸 전형적인 멕시코인이었다. 아버지가 큰애에게 돈을 주자 아이들은 우르르 편의점으로 달려갔고 잠시 뒤에 귀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과자를 하나씩 손에 쥔 채 나왔다. 뭔가 특별한 날이라 아버지가 인심을 쓴 듯했다.
큰애는 동생에게 하나 더 간 음료수에 심통이 나 있다가 아버지가 콜라 한 병을 사 쥐어준 뒤에야 풀어졌다. 아이 넷의 아버지. 한눈에도 넉넉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공항 한쪽에서 신중한 표정으로 한 사내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란 똑같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짐 지워진 책임감에 울적해졌는데 멕시코통인 일행 중 한 분이 주의를 주는 바람에 정신이 반짝 들었다. "소매치기가 극성입니다. 가방 조심하세요."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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