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기존 판례를 바꿔 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출범한 1988년 이래 형법의 형벌조항(각칙)에 대해 위헌을 선고한 첫 사례다.
이번 결정은 현재 재판 진행 중인 사건뿐 아니라 과거 이 죄로 유죄를 받았던 사건까지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와 관련한 재심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기사 5면
헌재는 26일 혼인빙자간음죄로 기소돼 실형 확정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복역 중인 임모씨 등 2명이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위헌)대 3(합헌)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이공현 김희옥 김종대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혼인빙자간음 조항은 남녀평등에 반할 뿐 아니라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고 있다"며 "이것은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역행하는 법률"이라고 밝혔다.
또 "개인의 성생활과 같은 내밀한 사생활에 대해 국가는 최대한 간섭을 자제해야 한다"며 "결혼과 성에 대한 국민의 법의식 변화에 따라, 여성의 착오에 의한 혼전 성관계를 법률이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은 이미 미미해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강국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이 조항은 혼인을 빙자해 부녀자를 속이고 성관계를 가진 남자를 처벌함으로써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합헌 의견을 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2002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한 판례를 바꾼 것이다. 당시 헌재는 "해당 조항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이고,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국회에 대해 혼인빙자간음죄의 폐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요구한 바 있다.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많이 향상되고 성문제에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 반영됐다"며 "국가의 형벌권은 개인의 사생활 문제에 최소한의 부분에서만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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