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문제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노사정 모두 제각각 정해놓은 방향에 따라 움직이며 빠져나갈 명분쌓기에 급급하다 보니 논의구조에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법대로'만을 외쳤고, 노동계는 협상보다는 총파업과 정책연대 파기를 내걸고 밀어붙였으며, 사측도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협상시한 연기와 함께 정치권 중재를 통한 막판 극적 합의의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12월 뜨거운 동투(冬鬪)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불 붙은 책임론
25일 오후 최종 담판이 열렸던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에 모인 노사정 대표들은 이날도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파국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데 주력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는 진정성 있게 협상에 나서라"면서 "노조가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는 비열한 방법을 당장 버리라"고 촉구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는 법 시행을 전제로 연착륙 방안을 내놓으라는데 협상을 하자는 거냐, 말자는 거냐"며 "협상이 파국으로 끝나면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고 가세했다.
이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현행 규정을 바꾸는 게 아니라 법 취지에 맞게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늘 합의해야 제도시행에 따른 연착륙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수영 경총 회장은 "복수노조 허용은 나라 경제에 예상치 못한 혼란을 가중시키므로 당장 시행하면 안 된다. 또 전임자 임금은 노조 스스로 마련하는 방안을 확립해야 한다"며 "오늘 대화를 통해 (논의를) 연장하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법대로, 노동계는 자율로
이날 회의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으로 비례대표제 등 일부 접점을 모색했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20일 회의에서 노조가 일정기간 자율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과반대표제'를 우선 추진하되 무산될 경우 각 노조의 조합원 수에 비례해 교섭대표를 선출하는 '공동교섭대표제'를 제안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경영계는 복수노조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관련, 정부는 일단 시행한 뒤 문제를 보완하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재정이 취약한 중소업체 위주로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노동계는 전임자 임금을 법으로 금지한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이 조항을 없애고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총파업으로 가나
연대총파업을 선언한 노동계는 일단 장외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국노총은 28일 전국 16개 시도 노동관서와 한나라당사 앞에서 15만명(노조 추산)이 모이는 동시집회를 통해 정부를 성토하고 총파업 동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또 코레일 등 공기업들 노조가 동조파업에 들어가고 통합공무원노조도 12일께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동투가 예상된다.
하지만 양 노총의 파업동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통합공무원노조가 변수이긴 하지만 민주노총의 세력이 전보다 약화했고, 한국노총의 경우도 소규모 업체 노조가 많아 파업의 위험부담이 큰데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카드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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