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 행위의 처벌을 규정한 형법 304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여성 지위의 향상과 개방적인 성 문화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2002년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합헌 의견을 낸 것과 반대로, 이번엔 6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과 성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잘 보여준다.
혼인빙자간음죄 처벌은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는 여성의 정조나 처녀성을 목숨처럼 중시하고,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적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 시기였다. 그러나 여성은 이제 과거처럼 소극적,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 아래 생활을 영위하는 적극적,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형법 304조는 여성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한 채 여성을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능력조차 없는 열등한 존재로 봄으로써 변화한 현실과 한참 어긋나 있었다. 또 여성을 두 부류로 나눠 '음행(淫行)의 상습 없는 부녀'만 보호 대상자로 삼아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헌재의 표현대로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 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 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던 셈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사생활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성 문제를 국가가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규제해선 안 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형법은 인간 기본권을 침해하는 형벌을 수단으로 하는 법인 만큼 그 적용은 최소한으로, 보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헌재가 "성과 사랑은 법이 통제할 문제가 아닌, 사적인 문제"라며 남녀간 성관계로 야기된 문제의 해결을 사회 도덕률에 맡기도록 한 것은 타당하다.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위헌 결정이 신성한 결혼을 순간의 쾌락을 위한 미끼로 활용하는 비뚤어진 성 문화까지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혼인빙자간음죄로 법정에 서는 남성이 한 해 평균 20~30명에 불과하지만 피해 여성이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건전한 성 윤리만큼은 지키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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