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은행가가 일반인의 지탄을 받은 적도 없다. 특히 경제위기가 휩쓸고 간 서구에서 은행가는 고액의 보너스와 부실대출, 구제금융 때문에 고객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런데 최근 독일의 한 은행 지점장이 '의적 로빈 후드 은행가'로 불리며 영웅으로 추앙받아 화제다.
24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독일의 모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는 62세 여성이 3년 동안 부자 고객들의 계좌에서 거액을 인출, 가난한 고객들(117개 계좌)에게 몰래 대출해 준 이야기를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익명의 지점장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자신이 일하는 은행에 예치된 고액 계좌들에서 예금주 몰래 무려 760만 유로(한화 131억4,550만원)를 조금씩 인출했다. 지점장은 그러나 인출한 돈을 한 푼도 자신의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그 돈을 신용이 떨어져 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출을 받지 못하는 딱한 고객들 계좌에 넣어준 것이다.
지점장은 우선 은행 본점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거액을 빼가도 티가 나지 않는 계좌들을 선별했다. 독일 WDR TV 보도에 따르면 그는 수년 동안 아무도 손댄 적이 없으면서 '여섯 자리 이상 잔고'가 유지된 계좌들을 골랐다. 이들 계좌가 '눈먼 돈'이라 파악한 지점장은 그를 찾아와 대출을 통사정하는 고객들에게 이 부자 계좌에서 꺼낸 돈을 입금해줬다. 하지만 '특별 대출'을 받은 고객들은 제때 돈을 갚지 못했고, 급기야 100만 유로가 고스란히 은행 손실로 돌아왔다. 결국 '의적'지점장은 손실액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연금까지 털어 넣게 되면서 꼬리를 잡히게 됐다.
그런데 독일 본 지방법원은 23일 '의적' 지점장에게 집행유예 22개월이란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그가 돈을 한 푼도 사적으로 쓰지 않아 횡령에 대한 통상적인 형량을 적용할 수 없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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