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의 의욕이 지나치다. 고충 처리와 부패 방지, 행정심판 등의 기능을 한데 묶은 것만으로도 팽대해진 업무와 권한이 두드러지는 마당에 이제는 아예 사정ㆍ감찰 기능까지 맡겠다고 나서는 듯하다.
권익위는 최근 고위공직자의 부패 행위에 대한 신고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거래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국민권익위원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사실상의 '금융거래 추적권' 신설로 영장주의나 금융실명제의 대전제인 금융비밀 보호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이재오 위원장은 '계좌추적권'이 아니라 '정보제공 요구권'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름이 무엇이든 금융기관이 거래자의 동의나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은 행정부의 정보제공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이 위원장은 또 위원회를 현재의 국무총리 소속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끌어올리는 데 대해 과거 고충처리위원회와 청렴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이었음을 들어 권한 강화가 아니라 원상 회복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세 위원회의 통합으로 권한이 막강해진 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지위까지 되찾는다면 이만저만한 지위 격상이 아니다. 금융정보 요구권이나 지위 격상 구상은 수사ㆍ감찰ㆍ사정 기관 회의체를 향한 이 위원장의 의욕에 비추면 지난 정권에서의 '공직수사처'신설 구상을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소관 업무에 대한 적극적 자세는 평가할 만하지만 그것이 제도적 변화를 꾀하는 수준이라면 특정 조직이나 개인의 태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대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조직의 기능 중복이나 조직구성 원리에 어긋나는 구상은 걸러지게 마련이지만, 이번 구상은 정권 실세인 이 위원장이 앞장섰다는 점에서 그런 상식적 기대마저 흔들린다.
아울러 여당 지도부가 강한 우려를 표했듯, 최근 굵직한 정책이 당ㆍ정협의 등 조정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설익은 상태로 쏟아지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제 미래기획위원회가 내놓은 '5세 취학'등의 저출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두 위원회를 정권 실세가 이끈다는 점을 우연의 일치로 여길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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