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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리포트] 日 '老老간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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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리포트] 日 '老老간호' 비극

입력
2009.11.2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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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일본 동북부 이바리키현 미토(水戶)지방법원에서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전직 목수의 살인사건 재판이 열렸다. 숨진 부인은 84세. 뇌출혈로 30년 이상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였다. 89세인 남편은 더 이상 자택간호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8월 중순 가족회의를 열어 부인을 고령자 요양시설에 입소시키기로 결정했다. 시설 비용은 월 12만엔. 부인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자식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그날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이틀 뒤 남편은 동반자살을 결심하고 부인의 동의를 얻었다. 남편은 부인의 목을 조른 뒤 자신도 목을 매달았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자 칼로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아들에게 발견됐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가족 간호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살인이나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일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 요양시설에서 간호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택 간호를 할 수밖에 없어 이 같은 사건이 증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도쿄(東京)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09년 10월까지 전국에서 고령자 간호를 둘러싼 가족이나 친족간 살인, 동반자살 등이 신문에 보도된 것만 400건에 이른다. 이중 살인이 59%, 동반자살이 24%이고 피해자는 부인 34%, 어머니 33% 등 여성이 70%를 넘었다. 가해자 연령은 60대 이상 '노노(老老)간호'가 60%를 차지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서도 고령자가 가족이나 요양보호사 등에게서 학대 받은 건수가 2008년에만 1만4,959건에 이르러 전년에 비해 12.2% 늘었다. 이 중 가정 내 학대가 1만4,889건으로 대부분이다. 가정 내 피해자 가운데 약 70%는 전문 요양이 필요한 고령자로 재택 요양 과정에 학대가 발생했다. 후생성 역시 간호에 따른 피로감을 중요 원인으로 추정한다.

고령자 살인, 학대 증가에는 '작은 정부'를 표방한 고이즈미(小泉) 정권이 2005년 요양보험 개혁을 통해 요양시설 이용료 개인 부담을 높인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거주비와 식비 등 요양보험시설 이용자의 자기 부담이 늘면서 비용이 거의 2배로 커져 눈물을 머금고 자택 요양을 택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후생성은 자택 요양 고령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었지만 복지재정 지출을 줄이는 게 목적이었다.

대담한 정책 변화가 없는 한 65세 이상 고령자 중 40% 정도가 월수입 10만엔 미만인 일본의 친족간 고령자 살인 사건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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