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위헌 선고를 내린 26일 오후 2시15분부터 형법 304조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은 그 효력을 잃었다. 결혼을 하겠다며 여성을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 행위는 더 이상 죄가 되지 않는다. 이번 결정의 효력은 과거 사건에까지 소급 적용된다.
헌재 결정은 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羈束)하기 때문에 현재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기소돼 전국 각급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공소를 취소해야 하며, 아직 기소가 되지 않고 입건만 된 상태라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된다.
과거 이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일반 법조항이 아닌 형벌 관련 조항에서 위헌 선고가 있는 경우 해당 조항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 조항에 근거한 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
혼인빙자간음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대한민국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모든 사례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아내면 전과 기록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재심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공소 취소와 재심 청구에 따른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일단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된 건수가 많지 않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가 접수된 사건은 지난해 428건, 2007년 451건인데, 이는 연간 총범죄 건수(형법 및 특별법 포함)의 0.02%에 불과하다.
범죄의 입증도 어려워, 실제 기소되는 건수는 연간 20~30건이다. 게다가 고소 없이는 처벌할 수 없는 친고죄라서, 재판 중에 당사자간 합의가 이뤄지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또 범죄 특성상 돈을 노린 사기죄 등과 함께 기소되는 경우가 많아, 공소사실 전체가 취소되는 경우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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