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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예산심의 제도부터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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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예산심의 제도부터 고치자

입력
2009.11.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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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법원은 문학진 민주당의원과 이정희 민노당의원의 국회 기물파손 혐의를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국회가 정상적 운영 능력이 없다는 판결을 받은 것이다. 판결을 반기는 여당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야당이나 국민이 보기에는 밉상이다.

가장 강력한 견제 장치

여야당은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두고 다시 작년과 같은 갈등구조를 만들고 있다. 여당은 단독처리 방침을 밝히면서 야당을 윽박지르고, 야당은 4대강 사업의 위법성 및 예산의 적절성에 시비를 걸면서 예결위 의사일정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 만일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단독 처리하려 한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몸으로 막는 폭력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짙다.

국회 운영에는 의원 간 존중과 관행이 중요한 규범이다. 그러나 최소한 선거법과 예산안 심의만은 여야가 합의해야 한다는 오래된 관행마저 깨지고 있다. 전체 예산의 1.25%에 그치는 4대강 사업 예산 때문에 야당이 전체 예산안 심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여당의 주장이나, 구체적 예산 세목을 밝히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야당의 주장 모두가 신통치 않게 들린다.

국회의 예산과 결산 심의는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도이다. 4대강 사업은 사안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무비판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수용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정치적 계산이 포함된 반대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은 여야 갈등이 아니라 여당을 포함한 국회와 행정부의 견제와 설득이라는 구도가 설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대결 양상을 보이는 여야당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예산 심의의 제도적 문제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행 예산 과정에서는 4대강 사업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과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헌법 제54조 2항은 정부는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이를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의 예산심의 기간이 60일에 불과하다. 미국의 240일, 영국의 120일보다 훨씬 짧다.

우리 국회에서는 국정감사 직후 예산안 심의가 이루지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정부예산 심의를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다. 지난 20년간 상임위원회의 예산심사 소요 일수가 평균 3.6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더욱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은 정부의 예산안 편성권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어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에서 여야 간 갈등을 부추긴다.

국회 심의 기간 너무 짧아

제도적으로 예산의 기초가 되는 국가 재정운용 계획은 현재 10월에 예산안과 함께 제출한다. 이를 4월에 국회에 미리 제출하도록 하여 국가재정 전반을 결정하는 틀에 국회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에서는 사전예산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본예산이 의회에 제출되기 전에 행정부의 재정운용 방안을 의회가 심의하고 있다.

원래 행정부는 의회에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회가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세목 단위가 아닌 보다 상세한 '세세항'을 예산과목으로 두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현재 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디지털 예산회계시스템에 국회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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