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법인화 문제는 5공 당시 교육개혁심의회의 권고안을 통해 표면화한 이후 20여 년 간 지지부진하게 논의가 진행돼온 사안이다. 그처럼 간단치 않은 문제가 최근 며칠 사이에 갑작스럽게 정리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장 큰 쟁점인 재정지원 문제에 대해 서울대의 요구를 교육과학기술부와 기획재정부가 전면 수용키로 했다는 것이다. 돌연한 정부의 입장 변화는 서울대 제2캠퍼스를 세종시에 조성하는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진 결과라는 것이 보도의 큰 줄기다.
원론적으로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화가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달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 대학들의 국제적 경쟁력이 국가위상과 경제력에 크게 못 미치는 현실에서 대표대학인 서울대의 도약을 위한 방안이라면 적극 찬성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법인화는 경쟁 및 효율논리에 따른 공공적 책무 약화, 비인기 기초학문의 소외, 학생ㆍ학부모 부담증가 등 여러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다. 개별 대학의 이해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면밀하게 판단하고 추진해야 할 문제라는 뜻이다.
법인화의 성패를 가름하는 양대 요소는 자율성과 재원 확보다. 정부가 전면 수용키로 했다는 서울대 안은 이사회를 통한 정부의 통제가 여전히 가능하도록 돼 있다. 반면 재정지원 부분은 안정적 정부지원을 무기한으로 약속 받는 등 그야말로 다른 대학에서는 꿈도 못 꿀 내용들로 돼 있다. 이 정도면 엄청난 특혜라는 비판에 대해 반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서울대 법인화 문제가 당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졸속으로 다뤄지는 점이다. 국가장래를 위해 대단히 용의주도하게 다뤄져야 할 교육사안이 세종시를 위한 하위 정책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양상이다. 실제 이런 식으로 결정되면 지방 국립대들이 바로 문제가 된다. 서울대에 맞춘다면 그 엄청난 재정수요를 어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서울대와 지방국립대, 일반 사학과의 불균형ㆍ차별 여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세종시 하나를 무리하게 건드리는 바람에 갖가지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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