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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국노총의 '이상한' 협박

입력
2009.11.2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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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삼성과 포스코에 노조를 만들겠다. 사용자 편을 드는 유령노조, 휴먼노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부수겠다"고. 내년부터 정부가 시행하려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맞선 일종의 협박카드다.

복수노조 허용이 '재앙'이라니

그런데 그 카드가 좀 이상하다. 복수노조 허용과 삼성, 포스코 노조 설립의 상관관계부터가 그렇다. 알다시피 삼성전자에는 노조가 없다.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포스코의 이름뿐인 노조도 마찬가지다. 현재 노동법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별도의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노조는 양대 노총의 숙원이다. 그 상징성과 실질적 이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노총은 2007년 '무노조재벌 대책회의'를 구성해 공개적으로 삼성과 포스코의 민주노조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노조탄압 백서인 <무노조 삼성 왕국은 없다> 까지 발간했다. 한국노총도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을 통해 삼성의 노조 설립을 독려하고 있다. 지난 2월 내놓은'삼성전자 노동조합을 만듭시다'라는 선언문에서 한국노총은"지금이야말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좋은 시기"라면서 모든 지원과 보호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나 호응이 없다. 왜 그럴까.'무노조 경영'을 위해 회사가 철저히 노무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삼성이 이런 노력을 강화하면 했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이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삼성과 포스코의 노조 설립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장 위원장의 말대로 삼성에 노조가 생기고, 포스코에도 제대로 된 노조가 만들어진다고 하자. 한국노총으로서는 이보다 더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재앙'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삼성전자 노동조합을 만듭시다'에서 밝힌, '임금은 높으나 비인간적인 작업형태와 고용불안 등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장치로서의 노조의 긍정적 역할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노총이 이런 이상한 '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데는 삼성의 책임도 있다. 삼성은 복수노조 허용에 적극 반대다. 만에 하나 그로 인해 노조가 생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대신 노조가 없으니 전임자임금 지급에는 관대하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한국노총은 그런 삼성의 약점을 잡은 것이다. 삼성 역시 한국노총의 선택이'불감청고소원'이다. 한국노총의 의도는 분명하다. 영향력이 큰 삼성을 무기로 재계와 정부를 동시에 압박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노총 출신, 공단지역 출신 한나라당 국회의원 모임인 민본21까지 가세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이미 노조가 있는 현대차 같은 다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정반대다. 어차피 복수노조는 시대적 흐름이니 허용해도 좋다는 것이다. 반면 강성노조, 강경투쟁의 원인인, 1년에 4,288억원이나 되는 전임자 임금 지급만은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면 복수노조 허용으로 인한 노조 난립과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무노조 경영이 '최고'는 아니다

"연구개발(R&D) 분야에 노조가 생기면 망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 R&D 연구소 직원 1,000명 대부분이 노조에 가입한 현대차는 벌써 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기술력이 높아지고 생산직의 과격한 투쟁을 순화하는 완충작용을 해주고 있다. 임태희 노동부장관도"연구개발 분야의 노조가 목소리를 내고, 크게 성공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침체된 이공계에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삼성의 'R&D 노조' 설립에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노조가 생긴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노조가 허용된다고 노조가 난립하는 것도 아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지급문제야말로 특정 기업, 정치집단, 노동단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노사정 6자 회담이 끝난다. 어쩌면 이제부터 원칙의 존중과 이성적 판단이 더욱 필요할지 모른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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