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해 세계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3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2.7%, 연율로 12%를 넘어 당초 마이너스 2~3%로 예상됐던 연간 성장률이 0%대로 회복될 것으로 추정되고 내년엔 4~5%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외 분석기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심지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이 5.5%에 이를 것이라는 깜짝 의견을 내놨다.
거시지표-체감경기 괴리 더 커져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이같은 회복세는 누가 봐도 놀랍다. 미국 등 선진국의 내년 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전 세계 성장률 역시 3%대로 추정되는 것에 비춰 봐도 그렇다. 한국은행이 미국경제의 더블딥 우려 등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11월 기준금리를 9개월째 동결했지만 생산활동과 수출의 견실한 증가세, 그리고 특히 소비와 투자 등 내수의 개선에 방점을 찍은 것도 눈에 띈다. 출구전략이 다시 쟁점화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올 초 장ㆍ차관 워크숍에서 "내년에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싹을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이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직사회의 책임과 헌신을 다그친 것이 유효했던 셈이다. 또 '대통령과의 원탁대화'TV 프로그램에서 밝힌"재정지출 확대와 금리인하 등의 선제적 대응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회복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약속도 지켰다.
하지만 위기 이후 접할 우리 경제의 모습이 '희망적'으로 흘러가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이 궁색해진다. 정부는 우선 큰 경제를 잡아놔야 친서민 정책 등 작은 경제를 살릴 토대가 마련된다고 말하겠으나,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서다. '미스터 둠(비관론자)'으로 불리는 미국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미국에는 천천히 회복되는 작은 경제와 여전히 깊은 침체에 빠진 큰 경제가 존재한다"고 꼬집은 것처럼 말이다.
'작은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주범이자 소수 기득권층인 뉴욕 월가와 자산계층을 지칭하며 '큰 경제'는 사상 최악의 실업과 신용경색에 허덕이는 다수 중산층과 빈곤층을 지칭한다. 이 분류를 좀 거칠게 확대하면 지금 우리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다. 국가는 사상 최대 무역흑자와 외환보유액을 기록하고 대기업과 자산계층 역시 환율효과와 금융완화 등에 힘입어 위기 전보다 더 좋은 시절을 누리지만, 대다수 서민층의 삶과 중소기업의 형편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에 의해 근근이 이어가던 일자리 상황은 불투명하고, 대출 만기연장과 신용보증 시한이 연말로 끝나는 중소기업은 갈 길이 막막하며, 80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 상환부담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사회의 양극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되레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거시지표 개선에 고무되면서도 "지금은 중요한 변곡점"이라며 긴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일 것이다.
작금의 위기가 무서운 것은 즉각적인 시장파괴보다 낯설고 새로운 축적경로, 이른바'뉴 노멀(New Normal)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반성장과 균형발전이 배제되고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상황 말이다. "대통령은 취업 눈높이를 낮추라는데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각 분야에서 상위 1~3위 정도만 살아남는'잘난 놈 사회'로 가는 것을 본 대학생들이 뭘 생각하겠습니까. 오죽하면 최근 중견 건설사들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 건설사들에게 아파트 시공권을 통째로 넘기기까지 하겠습니까"는 항간의 푸념은 한 단면이다.
승자독식 '뉴 노멀' 구조 경계해야
그렇다면 지금은 위기가 덮쳤을 때보다 더 경제 관리에 집중할 시기다. 학자금 후상환제 미소금융 보금자리주택 등 친서민 코드로 내놓은 정책들이 잘 추진되는지, 대ㆍ중소기업 상생이 말처럼 이뤄지는지, 대기업들이 1,000%를 넘게 유보금을 쌓으며 왜 투자를 꺼리는지를 점검해 다각적 대책을 마련해도 부족한 때다. 하지만 정부는 세종시와 4대강에 빠져 정작 중요한 의제를 놓치고 있다. 작은 경제는 웃어도 큰 경제가 우는데 희망은 어디서 놀고 있는 걸까.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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