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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끝장토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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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끝장토론 유감

입력
2009.11.2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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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ㆍ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숙원이 이뤄졌을 때 민주진영은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통일민주당의 두 리더인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 모두가 대선에 나서려 했기 때문이었다. 절박해진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은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9월 20일 국회 소강당에서 YS, DJ와 양 진영 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후보 단일화를 위한 토론이 진행됐다. 그러나 알다시피 두 사람은 뜻을 꺾지 않았고, 결국 민주화투쟁의 성과물은 엉뚱하게도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돌아갔다. 아마도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끝장토론일 것이다.

▦박찬종 전 의원은 회고 글에서 그날의 끝장 못 낸 토론결과를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전했을 때의 장면을 묘사했다. '그의 눈에서 엷은 노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오랜 세월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노기 서린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그토록 간절하게 민주화를 염원해온 고인으로선 민주진영의 패배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웠을 것이다. 끝장토론이란 말 그대로 끝장을 볼 때까지 무제한 토론을 계속하는 방식. 그러나 그 용어의 비장함은 도리어 '합의 도출 가능성이 거의 없음'의 역설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노사정 6자 대표가 22일부터 나흘 간 매일 끝장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어떻게든 접점을 찾아보자는 의지일 테지만, 복수노조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 등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크고 완고해 합의는 난망이다. 이 뿐 아니다. 최근 불과 몇 달 간의 뉴스만 돌이켜봐도 온통 끝장토론이다. 세종시, 4대강 문제는 물론 대북정책, 미디어법안, 대북정책, 교육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교계간 끝장토론을 제안한다. 끝장토론이라는 말이 이토록 자주 쓰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 '소통 불가' 영역이 넓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실 토론은 우리사회에선 승부를 가르는 한 판 대결일 뿐, 애당초 조정ㆍ합의와는 거리가 먼 형식이다. TV토론 시청자나 방청인들도 대개 승패를 평가하는 관전(觀戰)자 입장이다. 하긴 역사상 최고의 토론달인인 소크라테스도 상대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인 이유는 딱 하나, 이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몽테뉴가 <수상록> 에 쓴 얘기다. 여기다 '끝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접두사까지 얹으면 토론에 나서는 이들은 그야말로 임전무퇴의 각오를 품은 장수의 심정이 될 터. 그러니 좋은 결과를 위해서도 더 이상 끝장토론 같은 용어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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