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고 슐체 등 지음ㆍ노선정 등 옮김/민음사 발행ㆍ전2권(264, 288쪽)ㆍ각 권 1만2,000원
유럽은 다양한 종교ㆍ문화ㆍ역사적 배경을 가진 대륙이다. 개별 국가, 개별 문화의 전통은 모자이크 조각처럼 짜맞추어져 '유럽 문화'라는 큰 그림을 그린다. 문학은 어떨까? 유럽의 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국내에 소개된 유럽문학은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문학 정도에 그쳤다.
유럽연합(EU) 27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을 묶은 <유럽, 소설에 빠지다> 는 이같은 아쉬움을 달래줄 만한 소설집이다. 주한 외교 대사들의 문학모임인 '서울문학회'의 공동설립자이자 2006년부터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문학애호가 라르스 바리외 주한 스웨덴 대사가 주도적으로 기획했고, 1년여의 번역작업을 거쳐 책으로 묶었다. 유럽,>
수록된 작가와 작품은 유럽연합 27개국의 주한 대사관 또는 본국의 문학 관련 기관의
추천을 통해 결정됐는데 40대 안팎의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국내 소개된 작가라면 동독 출신의 독일인이 통독 후 겪는 인생유전을 다룬 작품으로 최근 국내 번역된 <새로운 인생> 의 작가 잉고 슐체(독일), 상처받은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통해 그것을 극복한다는 내용의 연애소설을 주로 발표해온 안나 가발다(프랑스) 정도. 지리에 관심이 없다면 지도를 꺼내서야 그 위치를 확인해야 할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몰타, 키프로스 작가들의 작품이 이 책을 통해 국내 처음 소개된다. 새로운>
'유럽 도시의 삶'이라는 공통 주제로 묶였지만 소설들은 남녀간의 연애, 이민자의 고단한 삶, 균열되는 가족관계, 공산권 붕괴 후 동유럽인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변주된다.
오스트리아 작가 블라디미르 니키포로브의 '어느 야간 경비원의 일기'는 서유럽으로 이주한 러시아 이민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구 소련 최초로 파울 첼란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쓴 지식인이지만 빈의 백화점에서 야간 경비원 일을 하는 처지다. 오스트리아, 터키, 유고슬라비아 등 각국 노동자의 행태를 관찰하고 유럽 내에서 그들의 위계관계를 분석하는 주인공의 눈매는 예리하다. 공산주의 시절 이데올로기 수호의 전위에 서 있다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하층 노동자로 전락한 자신과 같은 러시아 이민자들의 모습을 자기모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압권이다.
잉고 슐체의 '제우스'는 통독 몇 달 전 난생 처음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동독의 한 부부가 겪는 우스꽝스런 에피소드를 담았다. 부부는 서독 여권을 위조해 베니스로 피렌체로 버스여행을 떠나며 처음으로 자유의 공기를 만끽한다. 그러나 여행은 그들이 잘 알고 지내던 제우스라는 산악인이 성당 벽을 기어오르는 소동을 벌인 뒤 이탈리아 경찰에 끌려가며 희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체제 변환기 동독인들이 경험해야 했던 자질구레한 일상적 혼란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라르스 바리외 스웨덴 대사는 책 서문을 통해 "유럽의 협력은 민주주의와 인권존중 같은 공동가치에 기초를 두지만, 유럽은 지금과 같은 힘과 활력의 상당부분을 여전히 남아있는 각 문화의 개별성과 차이에서 얻고 있다"며 "유럽연합 소속 국가별로 한 작품씩 모아놓은 이 소설집이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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