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핸드백)이 부의 상징이던 시절은 갔다. 여대를 중심으로 십시일반 쌈짓돈을 모아 명품 가방을 장만하던 '명품 계(契)'는 강남일대 여고(일본은 중학교에서 유행)로 확산되고, 해외여행을 가면 으레 명품 가방을 둘러메고 오는 게 현실.
그래서 최근 업계에선 명품 가방이 부(富)가 아니라 소유자의 나이를 말한다고들 한다. 가격 디자인 쓰임새에 따라 브랜드 별로 선호연령이 다르기 때문. 명품 소비가 세분화한 셈이다. 명품업체는 손사래를 친다. 자칫 특정연령대에 한정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아 신세계 롯데백화점 명품관 쪽에 조사(카드고객 분석 및 각 매장 설문)를 의뢰했다. 아울러 SK마케팅앤컴퍼니의 소비자조사 사이트(틸리언패널) 회원 1,414명에게도 물었다. 4가지 결과를 토대로 각 연령대별 선호 명품을 소개한다. 명품 가방을 통해 당신의 나이를 짐작해보라.
로고에 매혹된 20대: 루이비통 스피디
대학생이나 새내기 직장인이 주로 찾아 흔히 명품 가방의 '입문 백'이라 불린다. 100만원 대 초반인데다 모노그램(글자를 조합한 로고) 라인이란 별칭에 걸맞게 로고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신세계 롯데 SK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30대에서 20대로 연령층이 낮아진 것도 특징.
엄밀한 의미의 명품은 아니지만(프레스티지 브랜드) 코치도 각광을 받았다. 'C' 로고가 반복적으로 프린트된데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게 이유.
명품 소비의 주력 30대: 투철한 실험정신
갤러리아백화점의 올해 1~8월 명품 가방 누적매출(자사카드고객 기준)에 따르면 30대의 구매비중(38%)이 가장 높았다. 명품 브랜드의 효자고객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곳도 엇비슷하다.
30대는 각종 명품을 섭렵하고 있다. 실용성과 인지도를 내세우면서 유행에도 민감하다. 루이비통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되 대중적이고 상대적으로 싼 스피디보다는 최근 선보인 토탈리 등 다양한 라인에 손이 간다. 30대는 에르메스뿐 아니라 멀버리 세린느 낸시곤잘레스 등 다소 생소한 명품 브랜드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클래식한 인지도 따지는 40대: 구찌 조이 라인
불혹(不惑)에 어울리게 은은하고 중후한 멋을 추구한다.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을 찾는다는 것. 구찌의 조이 라인은 롯데백화점 본점에서만 매달 700개가 팔려나가는 스테디셀러다. PVC소재라 가볍고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이다. 구찌의 시마 라인도 40대(SK 조사)가 1위였다.
비슷한 스타일인 세린느의 자카드 블라종 라인도 뽑혔다. 세린느 관계자는 "다른 가방에 비해 가볍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40대 고객에게 인기가 많다"고 했다.
화려한 디자인을 갈구하는 50대: 프라다 고프레
별칭이 '마돈나 백'인 고프레는 양 가죽을 섬세하게 셔링(주름을 잡는 유럽풍 수예)해 우아함과 화려함이 돋보인다. 가격은 제법 고가지만 실용성도 뒤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패션에 손이 가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50대 이상에게 인기가 높다.
한편 2,000만원이 넘어가는 콜롬보의 오데온백은 20대와 50대 고객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나타났는데, '혼수 백'이란 이미지 덕에 최근 부유층 예비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각광을 받기 때문이다.
갖고 있는 백은 루이비통, 갖고 싶은 백은 샤넬
SK 설문 결과 여성들이 세대를 아울러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명품 가방은 단연 루이비통이 1위(62%)였다. 다음은 구찌(38.3%) 프라다(27.5%) 샤넬 순이었다. 반면 가장 갖고 싶어하는 백은 샤넬의 얼굴 2.55백(27.2%)이었고, 에르메스 버킨백이 뒤를 이었다. 둘 다 명품 중에서도 가격대가 높은 축에 속한다.
백화점 관계자는 "명품 소유 여부가 계층을 가르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세대별로 찾는 브랜드가 달라질 만큼 대중화 추세라 이에 걸맞은 마케팅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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