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예중 발레과 19명 중 19등을 할까 걱정하던 아이. 토슈즈는 평생 한 켤레만 신는 줄 알고 닳아빠진 신을 신고 연습하던 아이. 발레리나 서희(23)는 "유명 아카데미 출신도 아니었고, 12세란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해 교내에서 동작도 잘 못 외우는 외톨이였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서희는 세계가 주목하는 신예로 떠올랐다. 세계 3대 발레단의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단원인 그는 연말 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과 내년 초 김용걸, 김지영 등이 출연하는 '에투알 발레 갈라'에서 국내 팬과 본격적인 만남을 갖는다.
ABT의 '코르 드 발레'(군무)인 서희는 지난 7월 프린시펄(주역)을 제치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아 큰 화제가 됐다. '세계적인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페리 이후 최고의 줄리엣'. ABT첫 한국인 주역이었던 그에게 쏟아진 찬사다.
여세를 몰아 그는 내년 ABT가 공연하는 '까멜리아 레이디'에서도 주역으로 출연한다. 강수진의 명연기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마르그리트라는 여인의 성숙한 사랑을 그린다. 농익은 연기를 요하는 주역은 보통 수석을 넘어 선임 격의 무용수에게 주어지는데, 군무인 그가 이 역을 맡은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그가 대접받는 이유는 뭘까. 무용칼럼니스트 정옥희씨는 "아름다운 몸, 정확한 테크닉, 풍부한 감정표현 이 세 박자를 고루 갖춘 무용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희는 "몸 어디가 뛰어나다기보다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길고 가는 체형은 사실 발레단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훌륭하다.
서희는 또 무용수로서는 드물게 세계 발레의 큰 갈래인 러시아, 유럽, 미국 발레를 모두 경험했다. 15살 때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으로 가서, 강수진이 활동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아카데미를 거쳐 ABT에 왔다. "러시아에서는 정확한 테크닉을, 독일에서는 제 몸에 맞는 발레를, 미국에서는 빠른 템포를 익혔어요."
여기에 수많은 시간의 노력이 더해져 비로소 완벽한 무대가 탄생했다. "연습은 효율적으로 하는데, 주어지는 일 자체가 많다"며 행복한 투정을 부리는 그는 "발레단에서 내가 오버타임 수당을 가장 많이 받는다. 토슈즈도 일주일에 허용되는 최대 개수인 10개를 모두 신는다"고 말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정상에 선 서희의 꿈은 발레리나로 은퇴하기. 안무가나 예술감독 등 큰 꿈을 품을 법도 한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뉴욕 소재 대학에 진학해서 무대미술이나 무대의상을 전공하고 싶어요. 미술에도 소질이 있거든요."(웃음)
'호두까기 인형'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12월 22~31일 공연되며, 서희는 23, 25, 27일 저녁 공연에 출연한다. 1588-7890
'에투알 발레 갈라'는 내년 1월 12,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02)599-5743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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