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8~16㎜, 지름 2.5~7㎜. 쌀 한 톨만한 녀석의 몸값(수백~수천만 원)은 부르기 나름이다.
더러 2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태생(국산 외제)도 중요하지만 몸에 난 흉터(홈)의 위치와 깊이, 숫자(보통 10~20개)도 꼼꼼히 따진다. 녀석의 피부를 망친 흉을 사람들은 인체공학이라 부른다.
티타늄 덩어리인 녀석은 인간의 열망 덕에 탄생하고 진화했다. 가혹한 가격과 인공(人工)에 대한 일각의 거부 및 공포가 여전하지만 녀석은 올해 3,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일궜다. 시장은 해마다 12%씩 커지고 있다.'자식은 오복(五福)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는 속담처럼 건강한 치아는 뭇사람의 희망이기 때문이리라.
녀석의 이름은 임플란트(implant). '꽂아 넣고, 박고, 심다' 라는 본디 뜻보다 인공치아 이식이란 뜻풀이가 친숙하다. 녀석은 보통 세 부분으로 나뉜다. 잇몸 속에 박혀 고정하는 본체, 인공치아, 이 둘을 연결하는 지대주가 각자 역할을 담당한다.
시술은 치과의사가 하지만 제작 및 시술교육은 각 업체 연구원이 맡는다. 국내 임플란트 업계 2위 ㈜디오의 박영민(Bio연구) 최명일(연구기획) 선임연구원과 이혜란(품질경영) 사원을 만났다. 이들의 손이 닿지 않은 임플란트는 한낱 금속에 불과하다.
다섯 번째 맛을 살려라!
수입 임플란트는 국산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다. 대중화한 지 30년 가까이 된데다 관련 임상경험과 데이터가 풍부해 안정성을 두루 검증 받은 덕인데, 국내 임플란트의 역사는 고작 10년이다. 그러나 최근엔 연구원들의 노력으로 역수출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연구원들은 국산의 장점으로 굳이 싼 가격을 들지 않았다. 대신 먹거리도 신토불이가 좋듯 인공치아 역시 한국인의 치아 기능에 맞췄다는 점을 꼽았다. 보통 사람이 느끼는 맛은 4가지(단맛 쓴맛 신맛 짠맛), 우리나라 사람은 한가지 맛을 더 느낀다(참고로 매운 맛은 맛이 아니다)고 했다.
바로 씹는 맛.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성상 맷돌처럼 옆으로 씹으면서 맛을 음미하는데, 수입품은 씹는 맛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최)이다. 박 연구원은 "저작(咀嚼ㆍ음식을 입에 넣고 씹음)이 잘되도록 임플란트 본체의 홈과 직경에 신경을 써 설계한다"고 했다.
외제보다 싸다곤 하지만 임플란트 가격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시술까지 무려 20단계나 걸리기 때문"(이)이란다. 원자재인 티타늄을 수입해 구조에 맞게 설계하고, 가공한 뒤 세척하고, 표면처리 후 건조하고, 멸균을 하는 것도 모자라 무균방에서 포장을 한다. 깐깐한 인허가 과정도 거쳐야 한다.
워낙 작다 보니 본체 표면에 홈 하나를 더 내도 가격이 뛴다. "시술의 최대 관건은 '임플란트가 뼈에 얼마나 잘 정착하느냐' 인데 똑 같은 재료로 똑같이 가공해도 표면에 뼈 성분을 입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박)고 했다. 역시 가격상승 요인이다.
다만 시술비용을 줄이면 30%정도 싸게 할 수 있다는 게 연구원들의 설명. 그러나 임플란트 성공의 7할(나머지는 제품)은 시술에 달려있으므로 치과의사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면허 없는 치과의사?
연구원들은 가끔 치과의사로 오해 받는다. 독특한 분야인데다 실제 치과의사들에게 시술과정에 대한 교육 및 강의를 하고 있으니 절반은 치과의사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의사면허가 없기 때문에 직접 시술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인체실험만큼 확실한 연구방법은 없을 터인데 연구는 어떻게 하는 걸까. 미용사가 가발 쓴 마네킹으로 헛헛함을 대신하듯 치아인형을 활용한다. 인형의 잇몸에 구멍을 내고 임플란트를 심는 식이다. 모양새는 갖췄으나 아무래도 정교함이 떨어진다.
그래서 연구의 핵심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컴퓨터를 통해 가상 시술을 하는 셈이다. 연구원 중엔 의용공학이나 재료공학 전공자가 많지만 기계나 자동차공학 전공자도 눈에 띄는 이유다. 자동차공학 관련 일을 하다가 무릎관절 연구(고려대병원 인공관절센터)를 거쳐 임플란트 분야로 옮긴 최 연구원이 그렇다.
시술도구 개발도 연구원들의 몫이다. 고객이자 아이디어 제공자인 의사들의 건의나 불만을 허투루 듣지 않는다. 시술시간을 단축하는 도구, 잘못 심은 임플란트를 제거하는 별도의 키트(닥터 SOS), 염증이나 시린 이 제거제품 등은 의사들의 꾸지람을 경청한 덕에 세상에 나왔고, 히트를 쳤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그대에게…
항간엔 임플란트 때문에 오히려 잇몸이 상했다는 증언이 떠돈다. 연구원들이 모를 리 없다. 최 연구원은 "임플란트가 자연치아의 충격흡수 기능에 미치지 못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반면 이 연구원은 "이가 빠졌는데 임플란트를 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종합하면 자연치아가 최상이지만, 원래 이가 기능을 상실했다면 임플란트가 '최적'이라는 것. 박 연구원은 "나무가 없으면 산이 무너지듯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반영구적인 임플란트를 하지 않으면 치아구조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했다.
100 마디 설명보다 한번 경험이 호소력이 있기 마련. 이 연구원은 "솔직히 걱정했는데 막상 해보니 전혀 아프지도 않고 만족도가 높다"고 웃었다. 조금 더 싸게 해주고 싶은 맘 간절하나, 연구만할 뿐 가격 결정권이 없는 터라 송구하다는 인사도 건넸다.
속상한 일도 있다. "국내 임플란트 업체는 100곳이 넘는데 변변한 공동연구시설이 없어서 서울에 있는 고가장비를 1시간 이용하려면 10시간 이상 버려야 하거든요."(박) 그래도 연구는 계속된다. 온 국민이 제대로 씹는 그날을 위해.
부산=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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