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인 정상화(77)씨는 '뜯어내기'와 '메우기'라는 그만의 작업방식을 통해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해왔다. 캔버스에 3~4㎜ 두께로 징크물감을 바른 뒤 말리고, 그 캔버스를 가로세로로 접어 부분부분 물감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아크릴 물감을 여러 겹 채워넣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면 그 자리에는 크고 작은 네모꼴 모자이크로 가득한 단색조의 미니멀한 형상이 나타난다. 화면 위로 드러난 요철로 인해 한 가지 색깔 속에서도 수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2년 만의 개인전에는 정씨가 고향 마산의 바다에서 떠올렸다는 푸른색 작업을 위주로 한 신작 20여점이 걸렸다. 수없는 반복의 행위를 통해 완성된 작품들은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바다처럼 오묘한 울림을 준다.
뚜렷하게 그려진 대상이 없다보니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쉽게 지나치고, 때로는 그림이 어디 있느냐고까지 묻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내 작품은 과정 자체로 끝이 난다. 결론은 보는 이에게 던져놓았다. 내가 하는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이다. '캔버스의 모든 것은 채워져서 비워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향점이다." 12월 6일까지. (02)734-6111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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