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에 대해 정당공천제에 집착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벌일 겁니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기초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전국위원장인 황주홍(57ㆍ민주당) 전남 강진군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당 공천제 폐지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 공천제가 도입된 것은 14년 전인 1995년. 그러나 기초단체장들이 중앙당이나 정치인 눈치만 보는 등의 폐해가 잇따르면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황 군수는 적나라한 사례를 들어 그 폐해를 설명했다. "몇 년 전 모 지역에 시장 후보자가 3명이었는데 결국 지역 국회의원에게 돈을 가장 많이 갖다 준 사람이 공천을 받았죠. 원래 공천이 내정됐던 사람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의원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의원 멱살을 잡고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의원과 의형제 사이였던 또 한 사람은 공천을 못 받자 의원과 의절했습니다."
황 군수는 "공천헌금이 횡행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된 것 아니냐"며 "공천제는 최후의 반민주 악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체장이 국회의원 대소사까지 챙기며 사실상 시녀 역할을 하고 있다"며 "모든 정치비리와 부정부패 사건의 절반 이상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정당 공천제 도입의 취지는 각 정당이 후보자들을 검증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나 황 군수는 "국회의원들의 공천제에 대한 집착 때문에 당초 취지가 변질된 지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오죽하면 독도는 일본에 내줘도 공천제는 포기 못한다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실제 18대 국회에 공천제 폐지를 담은 법률안이 4건 제출됐지만 한 건도 상정되지 않고 있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황 군수는 "정당 공천제가 풀뿌리 행정에도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도로포장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급식을 친환경적으로 할지 여부가 중앙당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런 부분까지 (중앙당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사업에 정치권의 이권이 개입되고, 총선과 대선 표로 직결되면서 지자체 행정이 중앙당과 지역구 의원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황 군수는 "한국처럼 지역 국회의원 한 사람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며 "그러다 보니 단체장이 국민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위한 서비스를 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도 당선 후에는 초당적 국정운영을 위해 탈당하는 마당에 시장 군수가 특정정당에 속해 있으면 되겠느냐"며 "공천제 유지는 더 이상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황 군수는 "공천제 폐지는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하는 것"이라며 "일본은 기초자치단체장은 100% 무소속이고 광역자치단체장도 무소속 후보가 많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지난 4월 실시된 단체장 보궐선거에서 22명 전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미국도 대부분의 주에서 공천제를 금지하고 있고 유럽은 일부 국가에서 공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철저히 당원 투표로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황 군수는 "공천제 폐지로 후보가 난립하고 검증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당이 검증능력이 있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대학총장, 농협 조합장, 교육감 선거를 보십시오. 정당공천이 없어도 후보가 난립할 우려가 없습니다. 유권자가 (후보자들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황 군수의 이 같은 뜻에 동참하는 단체장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 230명이 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공천제 폐지를 결의하기도 했다. 또 사회 원로 55명도 올해 7월 시국선언을 통해 공천제 폐지를 주장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70~80%가 폐지에 공감하고 있다.
황 군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공천제 폐지를 결의하지 않는다면 내년 선거에서 저를 포함해 공천체 폐지에 동의하는 자치단체장 40여명이 연합해 무소속연대로 출마하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며 "나아가 2012년 총선 때는 공천제에 집착하는 국회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 황주홍 군수
황주홍(57) 전남 강진군수는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보기 드물게 정치학 교수 출신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대에서 서양정치사상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황 군수의 '정당공천 폐지' 주장은 그의 행정경험과 함께 오랜 연구의 결과이다.
황 군수는 두 번 연속 당선되면서 행정 능력도 검증 받았다. 민선4기 지방선거에서는 76.1%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전남 시장ㆍ군수 당선자 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7년에는 기존 '과' 중심 체제를 팀제로 개편하는 등 기초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기초행정에 성과주의를 도입하기도 했다.
황 군수는 지난해 7월부터 전남 시장ㆍ군수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같은 해 9월부터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전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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