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들의 실적이 영 부진하다. 자산규모가 훨씬 적은 지방은행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은행 명칭만 보면 '글로벌' 수준이지만, 실적과 영업행태는 우리나라 '로컬'은행에 견줘도 뒤쳐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초라한 실적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의 3분기 실적발표가 마무리된 가운데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의 영업성과는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국내 간판은행은 물론, 웬만한 지방은행보다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SC제일은행이 3분기 벌어들인 당기 순이익은 723억원. 자산규모(72조원)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부산은행(32조원)은 이 기간 중 839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한국씨티은행도 3분기 당기순 이익은 379억원으로 부산은행은 물론 대구은행(651억원)과 비교해도 절반수준에 불과했다. 자산 규모 7조원에 불과한 초미니 지방은행인 전북은행(21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익 규모 뿐 아니라 내용도 실망스러웠다. 은행의 수익 창출능력의 척도로 불리는 총자산 순이익률(ROA)와 자기자본 순이익율(ROE) 모두 지방은행의 절반에도 못 미쳐 '글로벌 경영 노하우'이라는 말을 무색케했다.
선진 금융기법?
이 같은 실적부진에 대해 국내 은행업계에서는 '예견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외국의 상업은행이 우리나라 시중은행권에 진입한지 5년. 지난 2004년 미국 최대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이듬해엔 영국계 거대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뉴브리지캐피탈로부터 제일은행을 사들였다.
뉴브리지캐피탈이나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 아닌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은행자본이 국내시장에 입성한 만큼 , 당시 금융권에선 엄청난 지각변동과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으로 예상했다. 모 그룹의 선진 금융기법과 글로벌 경영 노하우, 그리고 전세계의 금융 네트워크를 앞세워, 낙후된 국내 은행업계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기대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SC제일이나 씨티 같은 외국계은행들은 '바람몰이'은커녕 오히려 스스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선진금융기법도, 글로벌 노하우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들의 3분기 실적부진은 외환파생상품 이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실 두 은행은 국내에서 영업보다는 모 그룹의 금융 계열사의 도움을 얻어 외환거래에 집중한 측면이 있다"며 "최근 환율이 안정되면서 이 같은 수익이 급격하게 줄어 순이익도 급감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상품개발보다는 가산금리를 높여 이익을 극대화하고, 금융당국의 권고와는 상관없이 출혈경쟁에 나서며 시장 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이 양도성예금증서(CD)에 붙이는 가산금리는 무려 4.3%에 달해 다른 은행보다 1%포인트 이상 높았다. 부동산 버블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올해 SC제일은행만은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 국회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다.
모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솔직히 외국계 은행들은 선진금융 상품을 내놓거나 글로벌 금융그룹에 걸맞은 영업방식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대로 갈 경우 두 은행은 국내에서조차 경쟁력을 잃어 성장의 정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