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며 우정을 쌓았던 까까머리 절친한 벗들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다시 만나 업계 최고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때론 닮은꼴로, 때론 다른 색깔로, 서로를 응원하는 업계 동료이자 경쟁에서 싸워 이겨야만 하는 경쟁자로 다시 만난 CEO들을 살펴봤다.
국내 건설업계 맏형으로 꼽히는 현대건설과, 건설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건설은 경북 문경중 15회 동기동창끼리 각각 CEO를 맡고 있다. 지난 3월 현대건설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중겸(59) 사장과 2007년 말부터 대우건설을 이끌고 있는 서종욱(59) 사장이 그 주인공.
서로 다른 고교에 진학하며 잠시 헤어진 이들은 고려대에서 다시 만났다. 서 사장은 경제학과 68학번이고, 김 사장은 건축공학과 69학번. 비록 전공은 서로 다르지만 건설업계 영업전문가라는 점에서 둘은 닮은꼴이다.
김 사장은 주택영업본부장을, 서 사장은 국내영업본부장을 지냈다. 해외건설 붐이 불던 1970~80년대 김 사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서 사장은 리비아에서 각각 사막의 모래밥을 먹으며 해외 현장을 누빈 것도 공통점이다.
회사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아픔을 겪은 것도 두 사람의 공통 분모. 대우건설은 2000~2003년, 현대건설은 2001~2006년 워크아웃을 거치며 다시 우량 건설회사로 체질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 당시 실무 책임자로 회사가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업계 최고 자리를 놓고는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경쟁자가 되고 있다. 건설업계 자존심으로 통하는 시공능력평가(시평)에서 1위 자리를 놓고 서로 뺏고 빼앗기는 관계가 되고 있는 것.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시평 1위는 대우건설이었다. 그러나 올해 현대건설이 6년 만에 1위 자리를 되찾음으로써 김 사장과 서 사장은 절친한 벗 사이를 넘어 업계 최고 라이벌로 엎치락뒤치락하게 됐다.
증권업계의 선두기업 사이에서도 중ㆍ고교 동기동창의 격돌이 흥미롭다. 박준현(56) 삼성증권 사장과 임기영(56) 대우증권 사장 역시 40년 지기 친구이자 라이벌 증권사 CEO로서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는 사이.
두 사람은 인천중과 제물포고를 같이 다니며 6년을 함께한 동기동창. 학창시절부터 전교 1,2등을 놓고 다투던 절친한 친구였던 이들은 최근 증권업계에서 다시 만나 업계 선두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다. 이 둘은 또 1년 차를 두고 같은 날 CEO로 취임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박 사장은 지난해 6월9일, 임 사장은 올해 6월9일 각각 CEO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경영 스타일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박 사장이 안정적 조직 운영을 통해 기회를 잡는 다소 보수적이며 수비적인 CEO라면, 임 사장은 과감한 변화와 기회를 만드는 공격형 CEO라는 평가다.
박 사장은 삼성생명 입사 후 재무기획팀장, 기획관리 부사장 등을 거치며 재무와 기획에 밝은 재무통으로 일해온 데 비해, 임 사장은 경력 대부분을 투자은행(IB) 업무에 몸담아온 전형적인 투자전문가 출신으로, 서로 경력 배경이 다른 탓이란 분석이다.
해운업계에서는 황규호 SK해운 사장과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의 친분과 경쟁이 눈에 띈다. 1955년생인 이 둘은 경기고 동기동창. 그러나 해운사 CEO 자리에 오르기 까지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밟아왔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황 사장은 해운업계 경력만 13년이 되는 베테랑 CEO다.
1992년 인력관리부장으로 유공해운(SK해운 전신)에 입사해 2003년 SK경영경제연구소로 옮기기 전까지 유공해운에서 기획부장, 벌크선 영업본부장, 벌크선 영업 담당 상무 등을 역임하며 해운업을 두루 섭렵했다.
2004년 SK CR전략실장, 2007년 SK 비서실장을 거쳐 지난해말 친정으로 금의환향한 셈이다. 반면 김 사장은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국 노스이스턴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뒤 20여 년간 씨티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전문가 출신이다.
2001년 9월 미국 롱비치 터미널 운영법인인 TTI에 근무하면서 해운업과 첫 인연을 맺은 김 사장은 2004년 1월 한진해운 부사장으로 영입되며 한진호(號)에 오른 뒤 지난해말 사장에 임명됐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