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은 불협화음을 내기 마련이지요. 몽상과 환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김연경(34ㆍ사진)씨의 장편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민음사 발행)은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꿈이란 것이, 오래 전 화석이 된 '사회주의 혁명'이다. 김씨의 소설에는 그러나 굳건한 신념과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1980년대 운동권 소설들의 주인공들을 연상하는 독자들이라면, 절로 '피식' 웃음이 나올 만한 이들이 등장한다. 고양이의>
그들은 사회주의 이론을 공부하는'PtRe('Proletariat Revolutionㆍ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약자)'라는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다. 고시 낙방생으로 사회과학 서적을 번역하는 일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김철수, 치과의사 아버지를 둔 강남의 명문대생 권민우, 민우를 짝사랑하면서 좌파들의 인간관을 비웃는 여대생 안정현, 딸 셋을 둔 가장으로 중학생 딸의 영어 숙제도 도와주지 못해 쩔쩔매는 하급 노무자 강 주임, 콜라와 햄버거에 환장하지만 입으로는 민중혁명의 대의를 역설하는 요물 같은 일곱살짜리 소녀 딸기. 이들 사이버 혁명가들은 급기야 소비에트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 서울에서 폭탄 테러를 하자는 작당을 한다.
대학가에서도 이런 모임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이 레닌에 의해 어떻게 변형됐고 어떻게 실제 혁명으로 이어졌는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게 그려진다.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혁명을 꿈꾸는' 그 진지함이란 비장하기보다는 코믹한 느낌을 준다. 그들의 작당은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각오만 비장했지 모든게 다 부실공사"인데, 그 거창한 모의는 권민우 집의 방 하나를 태워버리는 허무한 '불장난'으로 귀결된다.
요란했던 잔치의 쓸쓸한 뒤끝처럼 운동권의 동력이 떨어지고 대학가에 허무주의가 만연했던 1993년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에 입학, 80년대 학번 선배들과 사회주의 이론을 공부했다는 김연경씨. 석ㆍ박사를 마치고 러시아 유학까지 끝내고 막 돌아온 서른 살의 문턱에서 '거대한 꿈'이냐 '소시민적 삶'이냐를 고민하던 그는 문득 "모든 것이 쓸데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혁명을 꿈꾸지만 고작 유부녀와 불륜 행각을 벌이다 결국 입시학원 사장으로 성공하는 김철수의 '방황'은 정확히 작가의 그것을 투영하고 있다. 가난한 지방 수재로 서울 명문대에 입학해 받은 문화충격 때문에 부르주아적인 삶에 대한 위악적 경멸로 20대를 보냈다는 김씨는 "혁명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행복 찾기, 소소한 삶의 행복 찾기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번 소설은 '내 소설의 자리'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등 여러 권을 번역한 러시아문학 번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민중에 대한 신비화를 경멸하고 혁명에 대한 환멸감을 그린 20세기초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벨르이의 작품 <페테르부르크> 에서 <고양이의 이중생활> 의 모티프를 빌려왔다고 했다. 고양이의> 페테르부르크> 악령> 까라마조프가의>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