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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카자흐 아스타나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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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카자흐 아스타나 체험

입력
2009.11.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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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콩쿠르 심사를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며 어떤 곳일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나라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 근심은 적어도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기우였다.

아스타나는 옛 이름이'흰 무덤'이었을 정도로 춥고 황량한 불모지였다고 한다. 지금은 제 2의 두바이를 꿈꾸며 랜드마크가 될 만한 현대적 건축물들을 세우고 있었다. 이슬람 교인이 많아 히잡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가족들의 염려와는 달리 그 곳 사람들은 우리와 닮아 내가 외국인인 줄 눈치 채지도 못하였다. 고려인이 많아서인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더욱 친절히 반겨주었다.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것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심사위원들과 그 나라의 음악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올해 하노버 콩쿠르 결선에 오른 후보의 절반이 한국인이었다는 것도 화제에 올랐다. 그 많은 우수 인재들이 좁은 한국에 돌아와 무엇을 할지 의문이라고 한 악기 감정가 데이비드 모리스의 말이 떠올랐다. 영국 왕립 음악원 교수인 아니 슈나르치는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잇단 한국인들의 성과를 축하하면서도, 그들이 개성 없이 기계적인 연주를 보여줄 때가 많다며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점수로 매겨지는 경쟁사회에서 창의성이나 개성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이지만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도 창의력이기에 그의 충고를 가슴에 담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독일에서는 지독히 훈련을 쌓은 한국인들의 선전에 자신들이 그 동안 어린 학생들을 너무 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갖고 영재교육을 재점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회의 중간중간 러시아어가 자주 튀어나왔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중년층이상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러시아인이거나 그 곳에서 수학한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공부했더라도 스승의 족보를 2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 계보인 경우가 허다하다. 유럽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연주 활동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아 계보가 끊기거나 약해진 경우가 많다. 파가니니는 화려한 테크닉을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않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기술'로 오해 받기도 했다. 유럽과 달리 러시아는 체계적으로 후학을 양성했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훈련된 음악인들이 서방으로 나가 큰 인맥을 형성한 것이다.

그들을 보며 한국 음악 인재들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좁은 대한민국에 연연하지 않고 50년 혹은 100년 뒤에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주름잡는 모습이다. 이런 즐거운 상상에 호응하듯 아스타나 콩쿠르에서는 영국 유학중인 한국 학생이 만장일치로 1등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한국을 잘 몰랐던 외국인들에게 그 이름을 먼저 알린 정경화의 공이 크다. 박세리 열풍이 신지애같은 선수를 배출하고, 김연아 신드롬으로 많은 꿈나무가 빙판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5월, 서울국제음악제 개막 연주를 한 아이만 무사하자예바는 젊은 시절 국제 유명 콩쿠르를 휩쓸어 카자흐스탄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녀는 대통령이 구입해 영구히 대여해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 조국에 대한 보답인지 바쁜 연주 일정에도 국립예술대학 총장을 맡아 교육에 열정을 기울인다. 그녀를 닮고 싶어 땀 흘리는 학생들을 보며 아스타나의 음악계도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ㆍ국민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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