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젊은 우리들은 곧잘 소래 포구로 몰려가곤 했다. 바다를 보자는 게 구실이었다. 요란스럽게 들어선 횟집과 성가신 호객 소리를 뚫고 다가간 포구는 늘 물이 빠져 있었다. 갯벌 위로 모습을 드러낸 고깃배만 한참 내려다보곤 했다. 술 취한 듯 비틀대는 뱃사람과도 종종 마주쳤다. 누군가 땅멀미를 하는 거라며 알은체를 했다.
또래의 문학청년들은 소래 포구와 협궤열차에 관한 시를 즐겨 썼다. 그 시들 때문이었을까 협궤열차인 수인선의 폐선 소식은 남다르게 들려왔다. 포구에 같이 갔던 일행 중 누군가는 마지막 수인선을 타보자고 전화하기도 했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소래 철교는 포구의 명물이 되었다. 지금처럼 안전장치가 없을 때였다. 아슬아슬 위험천만인 그곳에서 우리는 과장되게 소리 지르고 웃어댔다. 청년들은 무섭다는 연인의 손을 잡아 끌고 철교의 침목 위를 걸었다.
소래 철교가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기사에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날들이 떠올랐다. 인천 남동구에서는 존치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철교의 반대편 시흥시에서는 포구로 몰려오는 관광객들에 의한 피해를 들며 철거를 찬성하는 모양이다. 5년 전 철도청으로부터 철교를 천오백만원에 사들여 안전하게 보수한 뒤 공원을 만들 예정이라던 보도와는 사뭇 사정이 달라졌다. 그때 철교 위를 걷던 이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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