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은 자기 돈 써가면서 독도 알리기에 나서고 있는데,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뭐 하는 거냐?'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VANK)가 독도를 알리기 위한 '10만 홍보 전사'를 양성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가수 김장훈은 반크의 이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자비 수억원을 쾌척했다.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 국민은 일사불란하고 헌신적이다.
그런데 국민의 독도 사랑이 뜨겁게 달아 오를 수록 눈총을 받는 기관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이 재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기관으로 설립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왜'화끈한 액션'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21일 서울 서대문구 의주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집무실에서 만난 정재정(54) 이사장은 국민 여론과 진정한 극일의 방법론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취임 2개월째인 그는 최근 "일제의 한국 강점 100주년이 되는 내년부터 3ㆍ1 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10년 동안 역사 인식과 영토 문제가 한ㆍ중ㆍ일 3개국의 현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느 나라든 국력 발흥기에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북돋는 일에 나서기 마련인데, 중국이 지금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는 전역에 독립기념관을 대대적으로 건립하면서 민족주의 고취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백두산 연구에 나서고 고조선 발상지 개발에 나서는 것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일본 우파는 최근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우파의 위기감이 커질수록 독도 영유권 주장도 거세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ㆍ중ㆍ일 3개국이 역사 문제에 관한 한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해결책은 없는 걸까. 그는"역사 문제는 해석의 문제이고 어느 쪽도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맞대결을 해서는 어느 누구도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 왜곡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성명을 발표하거나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면 호응은 얻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역사문화재단의 설립 취지는 아닙니다."
그는 한ㆍ중ㆍ일 3개국의 국내총생산(GDP)가 세계 GDP의 2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서로를 동반자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역사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개국의 학자가 참석하는 학술회의를 자주 개최하고 있다"며 "3개국 학자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논의하다 보면 공통의 접점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 문제 해결의 방안으로 한ㆍ중ㆍ일 국민이 함께 쓸 수 있는 역사 교과서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1970년대에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은 공통 교과서를 개발함으로써 유럽공동체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우리도 한ㆍ중ㆍ일 공동 교과서를 개발하면 동북아 발전의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독도 알리기 운동을 벌이는 개인과 시민단체의 활동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 그는 "반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독도에 관련된 자료를 요청해오면 도움을 주고 있고, 필요할 경우 재정 지원도 하고 있다"며 "이런 사실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어서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역사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9월 서울시립대 교수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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