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렸던 뉴욕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IB)들은 올해 사상 최대순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록적 저금리를 이용한 주식투자 성공으로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4대 IB가 올 9월까지 벌어들인 순익만 225억달러(약 26조원). 금융위기의 원죄에도 불구, "역시 월스트리트"란 말이 나오고 있다.
# '키코' 피해기업의 대명사였던 태산LCD가 3분기 50억원대 흑자를 기록,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올 초 채권은행들이 출자전환을 약속해주면서, 이 회사는 90억원대 시설투자까지 할 수 있었다. 무모한 금융상품 투자로 부도직전까지 갔지만 회생의 힘 또한 금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다.
한 금융계 원로는 금융을 '풀포기'에 비유했다. "위기가 오면 먼저 쓰러지지만 위기가 지나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외 경제를 초토화시켰던 위기는 금융에서 시작됐지만, 경제의 회복신호 역시 금융에서 나오고 있다. 국가경제를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가히 금융이라 할 만하다.
위기에서 헤맨 지 1년여. 전문가들은 "다시 금융이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금융의 후진성이 IMF사태를 촉발시켰지만 외환위기의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금융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듯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도 시스템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고위관계자는 "힘든 시기였지만 이번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 IB모델이나 규제방향, 국내 금융기관의 위기대응능력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금융의 재도약을 위한 과제로 크게 3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정비. 월스트리트 IB들이 무너진 것은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ㆍ위험감수)만 있었지,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managementㆍ위험관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에 관한 한,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둬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둘째는 글로벌화. 협소한 내수시장 경쟁은 더 이상 무의미하며, 결국은 해외진출에서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는 평가. 일단은 동아시아에서 출발해 점차 세계로, 국내금융의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재확보. 금융의 경쟁력은 결국은 사람의 경쟁에서 나오는 만큼 우수금융인 양성 및 영입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정석 수석연구원은 "해외진출과 글로벌인재 양성 같이 알면서도 시간이 필요한 과제도 있지만 선진화된 리스크 관리와 자산운용처럼 국내 금융권이 미처 깨닫지 못한 분야에서도 환골탈태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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