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끝난 들녘은 황량하다.
나락이 사라진 빈 들판엔 찬 바람만 불어 댄다. 단풍도 이제 거의 다 졌다.
들과 산은 이제 잿빛으로만 치닫는다. 맨 몸을 드러낸 가냘픈 가지들이 처량해 보이기 시작한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의 경천호를 스쳐 용문사 쪽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호수의 물이 잔뜩 말랐다. 2, 3m 깊이의 호수가 '맨흙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 위로 가을비가 흩뿌렸다. 차창 밖을 스치는 건 무상함이 느껴지는 무채색의 풍경이다. 세월이란, 시간이란. 괜한 상념이 쏟아진다.
경천호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예천군 용문면이다. 산 깊고 외진 이곳은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 중 하나로 불려지던 곳이다. 고개마루 주변에 여러 저수지들이 들어앉았다. 비만 오지 않았으면 이른 아침 새하얀 물안개를 토해 냈을 예쁘장한 저수지들이다.
용문사 입구에 거의 다다를 때였다. 주변의 색이 갑자기 달라졌다. 잿빛은 사라졌고 짙붉은 황토색이 사방을 감쌌다. 주위를 가득 덮고 있는 낙엽 때문이다.
낙엽의 바다 위에 기품 있어 보이는 일주문이 오롯이 솟았다. 산속에 어찌 이런 넓은 자리가 있었을까? 갑자기 하늘이 열리는 듯 나타난 넓은 터에 가람이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운사의 말사인 용문사는 신라 870년 두운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낙엽 쌓인 긴 돌계단을 오르면 여느 절의 천왕문에 해당하는 회전문이다. 해운루를 통과해 만난 절 마당은 무슨 공사를 하는지 어수선했다.
정면으로 1984년 화재로 불탔다가 복원된 보광명전이 서 있다. 그 옆에는 용문사의 보물 중의 보물인 대장전이 있다. 용케도 사찰을 휘감았던 화마를 피한,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고려 명종 3년(1173)에 세워진 건물이다.
대장전이 불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외벽에 치장된 귀면(鬼面)과 물고기 조각, 용 조각 등이 불 막이를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장전을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쳐다보는 것도 왼쪽 문 위에 있는 조각이다. 도깨비가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양이다.
대장전 안을 둘러보다 티베트의 마니차를 닮은 듯한 윤장대(보물 684호)를 봤다. 경전을 놓은 책장 가운데 축을 달아 회전토록 한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내부에 불교 경전을 넣거나 겉면에 불경을 새긴 마니차를 돌린다. 마니차를 돌릴 때마다 경문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았다고 여긴다. 글을 읽지 못하는 민중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이 마니차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이 한국에도 있었다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최근 들어 마니차를 들여 놓는 사찰들이 많다. 그런 것을 보며 불전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 내겠다고 외국의 문물까지 수입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왔던 터였다. 그런데 그 윤장대가 버젓이 한국에도 있었던 것이다.
사찰의 설명문에는 금강산 장안사에 3층 윤장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회암사터와 혜음원터에 윤장대 축의 받침돌 유구가 있지만 현존하는 것은 용문사 윤장대가 유일하다고 적혀 있다.
왼쪽 윤장대의 8면에는 각기 다른 꽃살문이 새겨져 있다. 꽃살문의 아름다움만 놓고 보면 전국의 모든 사찰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윤장대는 보존을 위해 쇠줄에 묶여 있어 돌려 볼 순 없다. 대신 몸으로 윤장대를 돌았다. 아름다운 꽃살문 하나하나를 감상하며 마음 속 윤장대를 돌려봤다.
대장전의 정면에 있는 삼존불 뒤에는 금칠을 한 목각탱(보물 989호)이 있다. 조선 숙종 때 대추나무로 새긴 이 목각탱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가로 세로 2m가 넘는 크기의 이 조각은 화려한 금빛 도금이 돼 있다. 대장전 내부를 환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다.
조용하던 사찰이 북적거렸다. 부산의 어느 사찰에서 온 신도들이 대장전으로 몰려들었다. 어떻게 들어섰는지 좁은 대장전 안에 모두 자리를 잡고는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대장전 처마에선 가을비가 투둑투둑 떨어졌다.
대장전 계단 아래에는 자운루라는 2층 누각이 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회의를 하고, 짚신을 만들어 조달했던 호국의 장소이다.
사찰 마당 왼쪽에는 사찰의 유물들을 모은 박물관이 있다. 윤장대를 모사해 놓은 것이 있어 직접 돌려 볼 수 있다. 박물관에선 아름다운 빛깔의 탱화와 조선시대 유명 선사들의 초상화도 볼 수 있다.
예천=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예천군 용문면, 그림같은 초간정·황진이의 병암정… 타임머신 탄 듯
용문사에서 내려와 용문면사무소가 있는 금당실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지방도 928호선을 만난 지 얼마 안돼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정자가 눈에 띄었다. 초간정이다. 금곡천이란 넓지 않은 개울이 큰 바위를 만나 크게 휘돌아 가는 모퉁이 절벽 위에 들어선 정자다. 정갈한 그 모양이 한 폭의 멋진 그림을 보는 듯했다.
주변 나무들이 옷을 벗어서인지 정자는 더욱 또렷이 자태를 드러냈다. 솔향 그윽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드리워 정자의 운치를 더욱 빛내 줬다.
이 정자는 조선 중기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을 지은 초간 권문해가 심신을 수양하기 지었다고 한다. <대동운부군옥> 은 단군 이래 선조 때까지 역사 인문 지리 등을 총망라한 책으로 초간이 중국의 백과사전인 <운부군옥> 을 읽고 힌트를 얻어 편찬한 한국형 백과사전이다. 운부군옥> 대동운부군옥> 대동운부군옥>
그림 같은 초간정을 자세히 보고 싶어 정자를 품은 집의 대문을 두드렸는데 아쉽게도 반응이 없었다. 저 집의 주인과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 하룻밤 꼭 묵어 봤으면 좋으련만…. 처마에서 떨어지는 찰진 빗소리만 듣다가 자리를 떴다.
초간정에서 금당실마을 가는 길 중간쯤 '예천 감로루'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감로루가 뭘까 궁금해 차를 돌렸다. 농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 만난 건 특이하게 생긴 고택이다.
세월의 까만 때가 묻은 건물은 함양 박씨 예천 입향조의 묘를 지키기 위해 세운 재실이었다. 재실 한쪽에 누각을 세워 멋을 낸 것이 참 특이했다. 누각의 아래는 마구간으로 썼다고 한다. 비안개에 젖은 감로루의 풍경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금당실마을은 1960,70년대 우리 옛 농촌으로 타임 머신을 타고 들어간 듯한 분위기다. 입구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마을로 들어갔다.
옛 모습의 고택들과 구불구불 얽혀 있는 돌담길이 정겹다. 허리춤 높이의 돌담길은 곡선을 그리며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활짝 열린 대문과 낮은 담장으로 서로에게 툭 터놓고 사는, 그런 마을이다.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당실마을은 영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등장했다. '나의 결혼 원정기' '영어 완전 정복'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금당실마을에서 1km 떨어진 곳에 드라마 '황진이'의 무대가 됐던 병암정이 있다. 병풍 같은 큰 바위에 정자가 올라서선 굽은 노송 두어 그루와 어울려 너른 들판을 내려다 보고 있다. 바로 앞에는 연못이 있고 가운데 앙증맞은 인공섬도 있다.
■ 여행수첩
호산춘이 있는 문경시 산북면까지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좋다. 점촌ㆍ함창IC에서 나와 예천 방향으로 국도 34호선을 타고 가다 산양에서 좌회전한 뒤 산북, 동로 쪽으로 향한다. 산북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조금만 가면 길가에 호산춘 간판이 보인다.
산북에서 경천호를 끼고 달리면 용문사 금당실마을이 있는 예천군 용문면으로 향한다. 용문에서 수도권으로 귀가할 때는 예천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금당실마을 장거리에는 음식점들이 여럿 있다. 이중 안동식당은 두부가 주 메뉴다. 칼칼하게 끓여 내는 두부찌개가 5,000원이고 손두부는 4,000원, 칼국수는 4,000원이다. 주인이 직접 만든 두부 맛이 일품이다. (054)655_8752
예천=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