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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76〉어려운 환경의 음악영재 위한 '마스터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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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76〉어려운 환경의 음악영재 위한 '마스터 클래스'

입력
2009.11.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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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건국대 예술문화대 대강당. 이건산업이 마련한 마스터클래스(공개레슨)를 찾은 100여명의 청중이 숨 죽인 채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나지막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높낮이 없는 114안내 멘트를 떠올려보세요. 딱딱한 기계음을 듣고 어느 누가 감동을 느낄 수 있겠어요. 감정의 굴곡을 느낄 수 있게 강약을 확실히 구별해서 연주해 보세요."

수원시향 상임지휘자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의 말이 끝나자 피아노 앞에 앉은 이재영(14) 군이 잠시 숨을 고른다. 건반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 놓은 이 군은 연주를 시작했다. 이 군이 연주하는 파가니니의 곡은 확실히 앞선 연주 때보다 강함과 약함이 또렷이 달리 들렸다.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이 군의 연주를 듣던 김 교수는 "어깨를 가볍게, 가볍게"를 외치며 손을 휘젓는다. "좋아요.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지금보다 10배는 더 강약을 확실히 구별하도록 애쓰세요."

연주를 마친 이 군의 표정은 매우 밝아졌다. 무대를 내려오며 인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넘쳤다. "평소 너무 만나고 싶었던 김 교수님을 직접 만난 것도 영광이지만 저의 단점을 꼬집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40분의 레슨이 너무 짧아 아쉬웠어요."

이건산업, 장애·저소득 청소년들에게 1대 1 레슨기회 마련

연주 테크닉 교육 등 40분간의 짧은 지도에도 자신감 쑥쑥

이건산업의 마스터클래스는 올해가 3년째이다. 2007년 18회 이건음악회 초청 연주단체 유럽 금관악기 5중주단 '하모닉 브라스'가 국립맹학교 학생과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1대1 레슨을 한 것을 시작이다. 이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는 장애아, 저소득층 음악 영재들에게 거장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이건산업 관계자는 "장애와 가정형편 때문에 변변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에게 세계적 연주가로부터 연주 기법 등 음악을 배울 기회를 주려고 한다"라며 "비록 한 번의 레슨이지만 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음악에 대한 꿈과 희망을 키우게 하려는 뜻"이라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올해는 이건음악회 20주년을 기념해 건국음악영재아카데미와 손을 잡았다. 음악 꿈나무들을 대상으로 20회 이건음악회 초청 연주자인 세계적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스승 김대진 교수가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이날 이 군을 비롯해 음악 영재 3명이 김 교수로부터 피아노 연주기법, 테크닉 교육 등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자폐 증세가 있음에도 이날 쇼팽의 곡을 연주한 송선근(17)군은 "따끔하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해 주신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라며 "늘 마음에 새기고 연주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분이 좋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미 마스터클래스를 경험한 이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영국의 현악 4중주 그룹 '더 스미스 콰르텟(The Smith Quartet)'에게 바이올린을 배운 '한빛 맹학교 예술단'의 김지선(13)양도 그 중 하나다.

김 양은 "바이올린 연주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활 쓰는 방법(보잉)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라며 "혼자 연습할 때는 틀린 줄 몰랐는데 어깨에 힘을 빼고 노를 젓듯 활을 쓰라는 스미스 콰르텟의 가르침대로 했더니 연주가 훨씬 쉬워지면서도 음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한빛 맹학교 예술단 관계자는 "더 스미스 콰르텟의 닉 펜들베리(비올리니스트)가 지선이 연주에 큰 관심을 보이며 영국에 오면 직접 지도를 해주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라며 "지선이에게 그 말은 큰 힘과 용기를 주었고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라고 귀띔했다.

김 양은 올 초부터 한빛예술단의 '찾아가는 순회 연주회' 무대에 서면서 장애를 극복한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남윤 교수를 사사해 1대1 지도를 받고 있다. 몸이 불편한데도 음악에 대한 희망과 열정만큼은 수준급이라고 판단, 김교수가 직접 지선이를 가르치기로 한 것.

김 양은 가깝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더 큰 꿈을 지니고 있다. "신체 장애를 딛고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뚝 선 '이작 펄만'을 본 받고 싶다"라는 김 양은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휠체어에 앉아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는 이작 펄만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신체 장애가 음악의 장애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뒤 김 교수는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이건음악회가 대중들에게 좋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음악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평가한 뒤 "크게 돋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건산?관계자는 "해가 갈수록 마스터클래스에 대한 반응이 좋다"라며 "앞으로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할 수 있는 학생 수도 늘리면서 마스터클래스 뒤에도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이건산업의 해외공헌

이건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하다. 이건은 솔로몬군도, 칠레, 중국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라 밖에서 봉사 활동은 국내 기업의 세계화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해 온 박영주 회장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건은 자체 조림지가 있는 솔로몬 군도에 1989년 이건재단을 세우고 ▦무료 의료사업 ▦장학사업 ▦농업 및 임업기술 전수 사업 등 현지 사회 발전과 원주민을 위한 적극적 공헌 활동을 실천해오고 있다.

1991년에는 솔로몬군도 초이셀 섬에 승민기념병원을 열어 원주민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개원 이후 현재까지 수만 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혜택을 받았고 이 병원에서 태어난 솔로몬의 신생아도 상당수다. 아라라 지역에 클리닉을 추가 운영하여 주민과 직원의 건강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다른 지역 주민들 또한 의약품과 분만 시설에 대한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각 소재지 주 정부를 통해 주민에게 부족한 약품을 기증하고 있다.

장학재단을 통한 교육지원 활동도 활발하다. 초이셀 섬 및 뉴조지아 섬에 초등학교를 새로 지어 교육자재도 제공하고 91년부터 해마다 60~100여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국립미술관을 지어 솔로몬군도에 기증했다.

고부가가치 수종에 대한 종묘나 임업 기술 지원, 지역 주민 조림전문가 양성 코스를 운영해 해 마다 현지인 100여 명이 산림 전문가로 거듭나고 있다. 묘목을 싼 값에 공급하고 코코아 농장을 꾸려 주민을 돕는 등 영농 및 임업기술 전수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편 칠레에서는 ▦장학사업 ▦사생대회 개최 ▦경보단 후원 등 활동에 힘쓰고 있다. 1999년 이건 장학회(BECA EAGON)를 세워 10년 가까이 현지 고등학교와 대학의 추천을 받아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성적이 뛰어난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1999년부터 매년 칠레 라우타로시에서 어린이 사생대회를 열고 있다. 사생대회는 유치부, 초등학교 저학년생까지가 대상인데, 등급 별로 1, 2, 3등을 뽑아 시상한다. 이 대회는 라우타로시 시장을 비롯, 많은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는 중요한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국내외 다양한 사회공헌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아 이건산업 박 회장은 1998년, 2001년 각각 솔로몬군도 정부와 칠레 정부(Bernardo O'Higgins)로부터 최고훈장을 받았다. 한편 2005년에는 독일 몽블랑 문화재단이 문화 경영을 선구적으로 실천해 온 메세나 인사에게 수여하는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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