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 가면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사이에 두고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이 나란히 서있어요. 한국인은 흔히 클림트, 에곤 실레 등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에 대한 감상만 늘어놓지, 자연사박물관은 있는지조차 모르죠."
<파리식물원에서 데지마박물관까지> (해나무 발행)를 쓴 이종찬(53ㆍ사진) 아주대 열대학연구소장은 '문과형 여행'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말레이시아 여행 중인 그와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곳에는 벌써부터 캐롤송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파리식물원에서>
이 소장은 "여행자는 모름지기 식물학자라야 한다"라는 다윈의 말에 착안, 유럽과 일본의 박물학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식물원과 과학관을 여행지로 택했다. 그리고 자연과학이 이들 나라의 문명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사유한 내용을 책에 담았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에펠탑이나 노트르담 성당 대신 파리식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을, 영국에서는 대영박물관 대신 런던자연사박물관을 다니는 식이다. 그는 피카소의 명화를 감상할 때도 미적인 요소 외에 당시 과학사상과의 연관성을 찾았다. 주요 관광지에대한 찬탄이나 체험에 그치는 일반 여행서와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이 소장은 그런 여행을 통해 "한국의 지식문화가 얼마나 문과에 편향돼 있는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는 "국내 문과형 지식인들은 서구의 과학 발전을 '천재'의 탄생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조명했다"면서 "막상 그 천재들을 키워낸 것은 식물학, 박물학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책이 다른 여행서와 차별되는 이유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물론 그는 책 곳곳에서 과학자뿐 아니라 철학자, 작가들의 생애와 어록을 인용하면서 박물학적 지식을 드러낸다. 그는 "여행을 앞둔 사람, 17세기 이후 한국의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내 책을 권하고 싶다"며 "같은 관점으로 열대지방 여행기를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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