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준 등 엮음/학고재 발행ㆍ660쪽ㆍ5만8,000원
신윤복(1758~?)의 화폭 속 해사한 얼굴 몇을 빼 놓고, 조선인의 표정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의 없다. 조선의 식자들은 산수화(풍경화)에 비해 인물화의 가치를 낮춰잡았다. 지필묵의 세계에서, 꿈틀대는 생명을 지닌 주인공은 대개 산하대지(山河大地)였고 인간은 그 속에 점뿌림한 미미한 존재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화인들에게 인간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피사체였을 터. <역사와 사상이 담긴 인물화> 는 조선의 회화 속에 담긴 다양한 인간의 모습과 그 얼굴에 날염된 화인의 정신세계를 풀어 쓴 책이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적을 둔 젊은 연구원들의 글 28편을 엮었는데, 벼리를 잡은 것은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다. 역사와>
'고사(故事) 인물과 역사 인물이 담긴 그림' '풍속이 담긴 인물그림' '은일(隱逸)사상이 담긴 인물그림' 등 여섯 갈래로 대표적인 화가의 화풍과 기법 등을 설명한다.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각 주제에 담긴 사상적 배경과 풍속. 예컨대 사대부들이 그리길 꺼렸던 저잣거리의 모습은 18세기 화승(畵僧)들의 감로탱(甘露幀) 속에서 보부상과 주막 작부의 모습으로 살아 있다.
굳이 분류하면 학술연구서에 가까운 책이지만, 조선인의 삶과 표정을 들춰보고 싶은 독자라면 어렵지않게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다. 치마폭으로 어린 아이를 감싼 것 같은 김홍도의 관세음보살상(397쪽), 주인과 노비의 싸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백천사 운대암의 감로탱(443쪽) 등에서 조선인의 심성과 조선 사회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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