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일생을 걸으셨어요. 석 달 걸으면서 호들갑 떠는 것 같아 창피하긴 한데…."
전북 남원 실상사 도법(60) 스님은 19일 오후 기자들에게 '움직이는 선원'의 취지와 방식, 계획 등을 설명하다 말고 그리 말하더니 "언젠가부터 우리 불교가 정주수행 중심으로 치우치면서 운수행각 보살만행의 전통이 단절됐고, 역사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움직이는 선원'은 스님들의 안거(安居), 즉 여름 겨울 석 달씩 산문 출입을 삼가고 선방에 앉아 참선하는 수행을 일컫는 말이다. 실상사는 지난 여름 야단법석에서 올 겨울 안거(12월1일~내년 2월28일)는 '안거'하지 않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움직이는 선원'을 열겠노라 선언한 바 있다.
첫 해인 올해는 실상사 화엄학림 소속 연구기관인 화림원 정진 스님들을 주축으로 10여명이 도반을 이뤄 길을 떠날 참이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지리산 산길과 마을길을 따라 하루 약 15㎞를 침묵하며 걷고, 산자락의 크고 작은 절에서 숙식하며 해제일까지 총 800리를 걷게 된다. 민족의 성산이라 널리 불리지만, 이들에게 지리산은 신앙적으로는 그 자체로 부처의 몸이고, 수행적으로는 성스러운 도량이다. 세존대, 문수대, 천왕봉, 제석봉으로 지리산이 부처가 되고, 그 품에 화엄, 쌍계, 대원사등 이름난 사찰과 암자, 토굴 100여 개가 "장엄한 종합 수행 도량인 지리산 총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움직이는 선원'이 이고 가는 짐은 단순히 댐이나 케이블카 건설 등의 개발 기획으로부터 지리산을 지킨다는 소극적 운동이 아니라, 지리산에 깃들인 생명과 마을, 불교 및 다종교 문화 전체의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겠다는 웅장한 서원이다. 참가 스님들은 매주 연찬 수행도 하고 월 2회 야단법석도 벌이고, 기독교 등 이웃 종교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해볼 참이라고 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불교적으로는 신대승불교운동이다. "대승수행론의 기본 관점은 자신과 이웃의 이익이 다르지 않다는 불일불이(不一不異), 자리리타(自利利他)적 수행입니다. 현재 한국불교는 자신에게 집중해 이웃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약해졌고, 그럼으로써 대승불교 실천론의 정체성을 상실했습니다." 도법 스님은 신대승불교운동의 범례로 '움직이는 선원'과 함께 법륜 스님이 이끌고 있는 정토회, 실상사의 인드라망공동체 운동 등을 꼽았다.
그는 걷는 것이 단순히 문화적 도락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세상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생명은 문제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스스로 지니고 있는데, 현대인은 약과 기계에 의존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약화시켜요. 걸음과 몸놀림이 만병예방ㆍ만병통치의 힘일 끌어내 줄 것입니다." 도법 스님은 내년쯤 '지리산 성지화 불교연대'를 출범한 뒤 '움직이는 선원'의 일부 내용과 형식을 엮어 대중운동화할 구상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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