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쌀값 안정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수확기 산지 쌀 가격은 정곡 80kg에 14만~14만 4,000원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수확기 대비 12% 정도 낮은 수준이다. 농민들이 올 초부터 '쌀값 대란'을 예상하고 대책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쌀 시장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
'쌀값 대란'에 근본 대책을
정부는 9월까지만 해도 올해 쌀 생산량을 지난해보다 7만3,000톤 감소한 468만 톤으로 예상하고, 11만 톤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했다. 하지만 이달 발표된 실제 쌀 생산량은 예상보다 23만 톤 증가한 491만6,000톤에 이른다.
첨단 농업기술 덕분에 해마다 단위당 쌀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을 잘못 예측한 것이다. 올해 쌀 재배 면적은 92만4,000ha로 지난해 93만6,000ha보다 1만2,000ha 줄었지만, 300평당 수확량은 지난해 520kg에서 532kg로 증가했다. 정부는 쌀값 추락을 막기 위해 23만 톤을 추가로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결정했지만 별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쌀값 대란은 올해 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10년간 쌀 수급정책 부재가 낳은 산물이다. 쌀 시장은 2000년대 들어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에 빠졌다. 남북 관계가 밀월을 구가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해마다 남는 쌀 10만~40만 톤을 대북 원조로 소진했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쌀 수급정책을 세우지 않고 대북 원조로 쌀 공급과잉을 해결해 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관계가 악화하고 대북 원조가 중단되자 쌀이 남아돌아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쌀값 문제를 해결하려면 퍼 주기식 대북 지원보다는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
쌀 공급 측면에서는 다양한 용도의 쌀을 생산해야 한다. 소비가 줄고 있는 식용 쌀의 생산을 줄이고, 수요 잠재력이 높은 가공용과 사료용 쌀을 생산해야 한다. 고품질 식용 쌀, 다수확 가공용 쌀, 볏짚과 알곡 모두를 이용하는 사료용 쌀 등 다양한 용도의 쌀을 생산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쌀 재배 면적을 줄이는 생산조정제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선진국에서 실패한 제도이다. 올해 쌀 재배 면적은 1.2% 감소했지만, 쌀 생산량은 오히려 1.5% 늘어났다. 농민들이 재배 환경이 열악한 논부터 생산을 줄이고, 남은 논을 집약적으로 경작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증가한 것이다. 식량 안보에도 중요한 논 면적을 줄이는 것보다는 다양한 용도의 쌀을 생산해 식용 쌀의 공급과잉을 해소해야 한다.
수요 대책으로는 식용 쌀 위주 소비에서 벗어나 가공용과 사료용 소비를 늘려야 한다. 더 나아가 개발도상국 식량 원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쌀 수요를 단기간에 늘리기는 불가능하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쌀 소비 증가 방안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 쌀 소비가 계속 줄면 밀 콩 등 기타 작물의 수입이 늘어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장마철에 담수 기능을 하는 논이 줄어들어 홍수피해 등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가 불가능해진다.
다양한 용도의 소비 늘려야
장기적으로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식생활 교육이 필요하다. 쌀을 기본으로 한 전통적인 식생활이 건강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급격히 감소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한 교육과 홍보 강화가 절실하다.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쌀 가공제품을 개발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 쌀 가격이 높고 원화 가치도 상승 추세인 만큼 쌀 시장을 개방하는 조기 관세화를 통해 쌀 의무 수입량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두봉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