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훈훈한 뉴스를 전합니다. 조두순 사건, 나영이 잘 아시죠. 국민 여러분께서 마음 아파하시며 한 푼씩 모은 성금이 1억5,000만원을 넘었습니다. 나영이 가족은 이 성금 때문에 그 동안 받아오던 빈곤층 '기초생활 수급권'을 잃게 될까 걱정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그렇게 맹꽁이 같은 짓만 하진 않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위법이나 편법 없이도 성금은 성금대로, 수급권은 수급권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성금을 내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나영이 가족이 이젠 정상 생활로 돌아가도록 기원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할 소식이었겠으나 실제는 '희망사항'으로 그쳤다.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다는 이 정부가 만들어낸 진짜 뉴스는 어떠했나? "나영이 가족이 성금을 받는 순간 기초생활 수급권을 잃게 된다는 경기 안산시의 지적에 따라 16일로 예정했던 성금 전달이 취소됐다. 안산시는 보건복지부에 관련규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부탁했으나 열흘이 넘도록 답변이 없었다. 복지부는 '바빠서 검토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복지부 관계자는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핑계를 덧붙였다. "법과 규정이 그러니 정부로선 어쩔 수 없다. 안산시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성금 전달식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인터넷으로, 입 소문으로 퍼졌다. 17일 조간신문에도 이 사실이 보도됐다. 그날 오후 복지부는 "나영이와 유사한 사례에서 기초생활 수급자 선정에서 피해가 없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특례규정 적용을 검토하라고 경기도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나영이 가족의 딱한 사정이 언론에 보도되자 갑자기 복지부 직원들의 '바쁜 일'이 사라지고, 졸지에 관련 법규정 해석이 바뀌었단 말인가. 채찍으로 맞지 않으면 가지 않는 당나귀 꼴이다. 복지부동을 넘어 인정머리조차 없는 공복들이다.
▦'나영이 사건'은 가해자가 조두순으로 한정된 미성년자 성폭행사건의 범주를 넘어섰다. 아무런 인과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잔혹한 범죄에 희생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정부가 못해준 보상을 국민의 마음이 대신하고 있다.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유사 사건에 대한 응징 수위를 높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길도 넓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공무원들은 한나절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열흘 이상 뭉개고 있다가 오히려 딴죽을 걸고 나서는 형국이니 화가 치민다. 대한민국 수많은 나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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