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 잘 키운 원천 기술은 부의 무한 동력이다. 로열티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까지 창출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원천 기술 산업화를 목표로 1999년 대규모 국책 연구 과제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이 출범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개별 사업단의 과제가 순차적으로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이 사업의 성과와 과제를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2000년대는 '기가 시대'다. 컴퓨터 메모리 용량이 메가비트(100만비트)에서 기가비트(10억비트) 단위로 올라섰다는 의미다.
다음은 '테라 시대'다. 기가비트 용량의 1,000배다. 기가에서 테라 시대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은 반도체의 집적도. 일정한 너비의 기판에 얼마나 많은 회로를 담느냐의 승부다.
휴대용 전자 기기에 쓰이는 플래시 메모리는 얼마 전만 해도 집적도의 한계가 16기가 정도로 예측됐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2006년 32기가, 2007년 64기가 기술을 내놓았다. 그 기반엔 이 사업단 내 테라급나노소자기술개발사업단이 개발한 원천 기술이 있다.
원래 플래시 메모리는 정보를 전달하는 전자를 금속에 저장한다. 사업단은 이 금속을 절연체로 바꿔 집적도를 크게 높였다.
이조원 단장은 "현재 삼성전자가 기존 설비를 절연체 방식으로 변경하고 있다"며 "1, 2년 안에 차세대 플래시 메모리 양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차세대 플래시 메모리가 본격 양산되면 약 16조9,000억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테라 시대에 진입하면 정보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뀔 거라고 사업단은 예상한다. 휴대폰에 다언어 번역기가 내장되고, 로봇이 추론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춘다는 것. 마우스와 키보드 없이 말하는 순간 바로 전자정보로 변환도 가능해진다.
과학 패러다임 바꾸고 연구 방향 제시
한국의 전기ㆍ전자 기술력은 사실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이에 비하면 농업 기술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 최양도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장은 '우물'을 벗어날 기회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사업단은 벼에서 수확량을 크게 증가시키는 유전자 10여 가지를 찾아내 2007년 독일 회사 바스프에 기술을 이전했다. 바스프는 이 유전자를 옥수수 밀 유채 사탕수수 같은 여러 작물에 도입해 신품종을 만들 계획이다.
최 단장은 "신품종이 시장에 나오려면 5년은 더 있어야 하지만 지금도 상품화 연구 과정에서 사업단에 적잖은 기술료가 들어온다"며 "과거엔 농업 기술을 수출할 생각은 거의 못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그 통념을 깼다"고 말했다.
프론티어 사업은 나노기술 분야에서 미래 연구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조사 분 석 기관 룩스리서치는 한국의 나노기술 수준을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로 평가했다.
이를 더 끌어올리려면 나노 소자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나노 소재 쪽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나노소재개발사업단의 판단이다.
이 사업단은 전자 기기나 기계 부품 소재를 매끄러운 특수 나노 물질로 코팅하는 기술(DLC)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적용한 소재는 매우 단단해져 제품으로 만들 때 불량률이 현저히 줄고 생산성은 크게 높아진다.
서상희 단장은 "우리 기술을 이전받은 코팅 전문 기업 제이앤엘테크의 고용 인력과 매출이 2배로 늘었다"며 "기계 건축 환경 에너지 등 각 분야에 쓰일 나노 소재 개발에 집중하면 2015년 한국 나노기술 수준은 세계 3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0조원 이상의 경제 효과 창출
STEPI는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소관 16개 개별 사업단이 30조7,000억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기술이전 성과를 근거로 한 수치다.
원천 기술 산업화라는 프론티어 사업 본연의 목표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도달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사업단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1999∼2008년 16개 사업단에 투자된 금액은 약 1조4,000억원(민간투자 포함), 참여한 연구 인력은 8,500여 명(연인원)에 달한다.
이처럼 수백 명의 전문 인력을 한 사업에 결집해 연간 1,000억원 안팎의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한 연구 과제는 90년대의 과학기술부의 '선도 기술 개발 사업(G7 프로젝트)' 이후 두 번째다.
안두현 STEPI 연구위원은 "프론티어 사업의 성과는 256메가D램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같은 성과를 창출한 G7 프로젝트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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