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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전공학부 '잃어버린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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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전공학부 '잃어버린 1년'

입력
2009.11.1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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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학 자유전공학부 1학년 박모(20)씨는 내년 진로 선택을 생각하면 가슴이 탁 막힌다. '자유전공'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 과정뿐이다. 공공사회과정은 현대행정학ㆍ행정법원론 등을 듣는 사실상의 '행정고시 준비반', 사회규범과정은 '법과 사회' '범죄와 형벌' 등의 커리큘럼이 마련된 '로스쿨 준비반'이다.

인간문화연구과정은 사회인문 강좌를 잡다하게 모아놓은 '대학원 준비반'. 고시 볼 마음이 전혀 없는 박군은 "말 그대로 자유롭게 과목을 듣고 자기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들어와 보니까 고시ㆍ로스쿨 준비반이었다"며 "학과 정보에 어두웠던 내 탓도 있겠지만 동기 절반 가량이 나처럼 들어왔다가 당혹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B대학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정모(20)씨는 한 학기 만에 휴학했다. 정씨가 생각했던 자유전공학부는 1학년 때 관심 분야 수업을 두루 들은 뒤 2학년 때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학부였다. 하지만 첫 학기 그가 들어야 했던 강의는 행정학, 법학, 경제학, 정치학 등 국가고시에 필요한 과목 일색이었다.

특히 수강한 6개 과목 중 5개가 학교가 지정한 필수과목이었다. 2학년 때 선택하는 전공도 행정학, 법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대 내 5개 전공으로 제한되고 어문계열 등은 아예 선택이 불가능하다.

정씨는 "고시를 생각한 친구들은 고시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 만족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학부 정체성이 모호해서 불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부는 처음 입학했던 정원 56명 중 27명이 휴학하거나 자퇴해 2학기에는 29명만 등록했다.

서울 주요 대학들이 올해 처음 모집한 자유전공학부 학생 상당수가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학부 명칭 그대로 다양한 학문 영역을 섭렵하고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일부 학교에서는 자유전공학부가 로스쿨과 행정고시 등 국가고시 준비반으로 운영되고 있고, 몇몇 학교에서는 뚜렷한 정체성 없이 기존 전공을 복수전공식으로 선택하는 '잡과'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커리큘럼도 주로 행정학, 법학, 경제학 등의 고시 준비 과목으로 짜여 있어 다양한 강의를 자유롭게 듣기 어려운 처지다.

급기야 서울지역 11개 대학 자유전공학부 학생 대표들이 최근 '서울지역 자유전공대표 연석회의'를 결성, 두 차례 모임을 갖고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대표인 박준호(20)씨는 "일부 학교의 자유전공학부는 지속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고 어떤 곳은 커리큘럼이 너무 허술해 학생들이 당황하고 있다"며 "서로 위기의식을 느껴서 모임을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유전공대표연합회를 정식으로 발족해 각 학교의 문제점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상당수 대학이 로스쿨 신설에 따라 법대 정원이 줄어든 것을 메우기 위해 별다른 준비도 없이 자유전공학부를 유행처럼 만들었다"며 "자유전공학부의 취지인 전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統攝)'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애초부터 없다 보니 결국 고시 및 취업준비반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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