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오락전문 채널 tvN의 예능프로그램 '롤러코스터'가 시청률 4%를 넘었다. 1년 내내 부진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보다 높은 수치다. 많은 제작비를 투자한 것도 아니고, 주력 코너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패러디 극장'과 같은 꽁트인 '남녀탐구생활'임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다.
'남녀탐구생활'이 이 정도의 반응을 얻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20~30대 남녀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디테일한 묘사의 힘에 있다. 남자는 운전할 때 두 손으로 핸들을 잡으면 폼 안 날까 봐 애써 한 손으로 잡고, 여자는 사고 날까 두려워 두 손으로 핸들을 꼭 쥔 채 운전한다. 여기에다 "(여자에게) 백화점은 백 번 돌라고 백화점이에요"라는 식의 나레이션은 과연 기막히다.
하지만 이 코너의 매력이 빛날 수 있는 것은 형식의 파괴에 있다. 이 코너는 분명히 나름의 스토리가 있지만, 주인공 남녀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맥락을 거의 제거한다. 대신 그들의 모든 행동을 오직 묘사하는 데만 집중하고, 러닝타임은 10분 내외로 줄였다. 그래서 '남녀탐구생활'은 편성과 시청률에 코너를 맞추는 대신 시청자의 웃음 포인트와 생활 패턴을 파고든다.
시청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실컷 웃고, 인터넷 UCC를 통해 '남녀탐구생활'을 퍼뜨린다. '롤러코스터'의 시청률이 꾸준히 오른 것은 UCC로 '남녀탐구생활'을 본 시청자가 케이블TV로 '롤러코스터'를 보게 되는 선순환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남녀탐구생활'은 진정한 의미의 '케이블 예능'의 탄생이다.
과거 tvN '스캔들'은 '공중파에서 할 수 없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며 화제가 됐고, 음악전문 채널 m.net '슈퍼스타 K'는 막대한 투자로 '공중파 같은', 혹은 서구 리얼리티 쇼 같은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남녀탐구생활'은 공중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소재를 케이블TV가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형식 안에 집어넣었다. 굳이 안 되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 필요도 없고, 애써 3시간에 가까운 주말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매체의 구분이 사라지고 유튜브가 21세기의 TV가 되고 있는 시대에 필요한 건 어떤 환경에서든 시청자가 보게 만들 수 있는 유연함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기존의 코너를 폐지하고 '준비기간'이라는 명분으로 '패러디 극장'처럼 길게 늘어지는 시간 때우기용 코너로 한 달을 버렸다. 그 시간 동안 '남녀탐구생활'은 인터넷을 장악했다. 여기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더 나아가서는 지지부진한 몇몇 지상파TV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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