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거짓말이 역사를 바꾼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벨벳 혁명'20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NYT)는 체코 민중의 궐기가 유언비어 하나로 촉발됐다고 18일 보도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8일이 흐른 1989년 11월 17일. 동구권 공산주의 붕괴의 바람을 타고 체코 프라하 시내에서 학생들이 거리집회를 감행했다. 곧이어 경찰들은 몰아 닥쳤고, 마르틴 스미드라는 19세 대학생이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몇 명의 학생이 폭행 당했지만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유언비어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당시 언론인이었던 얀 유르반씨는 NYT와 인터뷰에서 "그 소식을 사실이라고 믿고 전달했다"며 "언론인으로서 오보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로 인해 40년 공산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 유언비어는 공산정권과 타협에 무게를 뒀던 대다수 체코인들의 마음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유르반씨는 "그 전까지 공산정권과 체코인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있으면 별탈 없이 보호해 줄 것'이라 암묵적 타협의 분위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학생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아이들이 죽고 있다, 타협은 끝났다'는 생각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성난 군중들은 거리로 몰려나왔고 19일에 20만명, 20일에는 50만명으로 불어났으며 27일에는 총파업이 진행된 가운데 거의 모든 프라하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다음날 체코 공산당은 일당제 철폐를 발표하고 항복했으며, 12월28일 극작가 출신으로 반체제 단체 '시민포럼'을 이끌었던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벨벳혁명이 완성됐다. 벨벳혁명은 성공적인 비폭력 시민혁명으로 세계사에 영예롭게 기록됐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7일. 프라하에서는 1만 여명의 시민들이 그날의 시위 장면을 재연하고, 벨벳혁명 20주년을 축하했다. 하벨 전 대통령과 바츨라프 클라우스 현 대통령, 얀 피셔 총리도 촛불행사에 참석했다.
체코는 현재 주변국들에 비해 민주화와 경제성장 면에서 성공한 국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 중 14%는 정치 불신, 사회적 불균형과 소외로 인해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공산당도 15% 내외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하벨 전 대통령은 "최근 정치불신이 늘어나면서 정치인과 국민의 괴리가 우려된다"고 진단하면서도 "체코는 법의 지배, 인권 존중, 자유시장 경제 등을 누리는 등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