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북핵 문제가 대결 구도에서 대화로 전환하고 남북관계가 경색에서 유화로 가는 길목이어서 의미 있는 방문이다. 북미 대화를 눈 앞에 둔 시점이어서 더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북미 직접대화를 8번이나 언급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가 평양에서 가까운 서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한미 정상이 논의할 과제
오늘 한미 정상회담은 오바마 대통령 방한의 하이라이트다. 국내외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귀를 쫑긋하고 두 정상의 대화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한미 간 조율된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두 정상이 꼭 논의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즉, 정권 교체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한미 양국은 그 동안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북한에 확신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김정일 정권을 북핵 폐기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체제인정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북미 적대관계 해소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도 그 위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에 호응해 김 위원장이 9.19공동성명, 2.13합의, 10.3합의를 복원시키고, 6자 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해야 한다. 이를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 정상선언' 형태로 천명해도 좋을 것이다.
둘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중 3국 협조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에서 미·중 정상은 한 목소리로 6자 회담 조기 재개를 촉구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의 근본적 입장 차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문제 해결 방식에 입장 차가 있지만, 미중 공조는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미중 공조의 긴밀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명확한 청사진이 마련돼 있지 않은 데 있다.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이며, 그 해결과정에서 중요한 행위자이기도 하다. 한·미·중 3국 협조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 정상의 협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셋째, 두 정상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상호 충분한 이해를 공유해야 할 것이다. 특히 12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 대화에서 논의할 최대치와 최소치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 충분한 대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6자 회담에 대한 한미 간 입장 조율도 중요하다. 두 정상은 최근 불거진 이견들을 해소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의 범위와 내용을 큰 틀에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랜드 바겐'에 동의하느냐 않느냐도 중요하지만, 북미 대화와 6자 회담에서 한미 공조를 위한 충분한 대화를 하는 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넷째, 오바마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해소와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북미 관계 정상화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해서도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함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남북ㆍ 북미 정상회담 디딤돌로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남북관계 사안을 언급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른바 '대청 해전'으로 고조된 서해상의 군사적 긴장이 확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과 이 대통령 모두에게 남북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 서울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대화와 6자 회담을 넘어 꽃피는 춘삼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기 바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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