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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도 수출산업이다/ <상> 국내는 좁다,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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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도 수출산업이다/ <상> 국내는 좁다, 세계로!

입력
2009.11.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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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휩쓰는 제조업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한국 금융투자(증권ㆍ자산운용)업계가 위기의 충격을 딛고 해외시장 개척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 수출'로 국부 창출에 나선 금융투자업계의 해외진출 전략과 문제점,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노력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999년 9월, 서울 여의도 선경증권(현 SK증권)에 미국 JP모건의 서신이 배달됐다. 외환위기 당시 태국 바트화ㆍ인도네시아 루피화 파생상품 거래에서 발생한 3억5,600만달러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

2년전 '고수익 상품'이라는 JP모건의 권유만 믿고 투자했던 선경증권에게는 억울하고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전문 변호사에 의뢰해 법적 대응을 모색했으나, 결론은 '이길 수 없다'였다. 결국 SK그룹은 화해 형식으로 투자 원금(3,440만달러)의 5.8배인 2억62만달러를 물어줘야 했다.

2009년 5월19일 새벽 4시, 여의도 미래에셋빌딩 7층 화상 회의실. 부리나케 출근한 이 회사 구재상 대표가 헤드테이블에 앉아 버튼을 누르자 5개 모니터 화면에 벽안이 얼굴이 나타났다. 영국, 미국, 인도, 홍콩, 브라질 현지법인의 최고투자책임자(CIO)였다.

구 대표가 "인도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해 미래에셋 인도 펀드 수익률이 20%나 올랐는데, 어떤 투자전략이 좋겠냐"는 묻자, 인도의 고팔 아르가왈 CIO가 브리핑과 함께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영국, 미국, 홍콩, 브라질 CIO까지 가세해 열띤 토론이 30분간 이어졌고, 인도 증시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불과 10년전만해도 외국자본의 먹잇감 신세였던 한국 금융투자업계가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뒤끝'이라 조심스럽고 신중한 행보지만, 해외에서 블루오션을 찾으려는 노력은 점점 더 탄력을 받는 모습니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해외 점포 신설은 6건. 작년의 6분의1 수준에 불과하지만, 하반기 이후 급증하는 추세다.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종금증권이 8월 도쿄 사무소를 개설, 일본 증시 공략의 첫발을 뗀데 이어 같은 달 18일에는 삼성증권이 홍콩법인을 확대 개편하고 국제 투자은행(IB)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삼성증권은 홍콩 IB사업을 가급적 조기에 정착시킨 뒤, 여세를 몰아 중국 싱가포르 대만 인도 등으로 거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산은금융지주 소속이 된 대우증권은 지주사의 해외 사업에 맞춰 1단계로 중국과 홍콩을 전략적 영업거점으로 집중 육성하는 한편, 홍콩 산업은행과 공조해 기존 홍콩법인 업무도 강화하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베트남 비엔비엣(CBV) 증권에 70억원을 추가 투자해 지분율을 49%까지 끌어 올렸다. IBK투자증권 역시 지난달 라오스 금융당국이 주최한 기업공개(IPO) 콘퍼런스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참여해 시장 진출을 타진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 전반의 이 같은 행보 속에서도 가장 주목할 곳은 '미래에셋'이다. 다른 증권사들이 국내 안주하던 2000년대 초부터 해외 진출에 나선 덕분에 점포망이나 현지 업무 수준도 가장 높다.

존 워커 한국맥쿼리 그룹 부회장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국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가운데 미래에셋이 가장 성공적이며, 특히 신흥시장에서 자산관리 분야에 집중한 전략이 뛰어났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3년 홍콩 현지법인을 시작으로 인도, 영국, 미국, 브라질 등에 영업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5개 해외법인에는 총 188명의 현지 전문인력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이 운용하는 83개 펀드의 규모는 총 13조9,900억원(9월말 기준)에 달한다.

사실 미래에셋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 증시 불안은 간판펀드인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이 급락하는 바람에 큰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최근 해당펀드 수익률이 회복세를 보이고 특히 인도와 브라질 등에서는 업계 수위를 달리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업계 15위 규모이지만 '멀티마켓 주식형 펀드'와 '배당주 펀드'의 2009년 수익률(11일 기준)은 101.69%와 103.50%로 업계 1위이며, 인도의 '인디아 오퍼튜니티'와 '글로벌 커머디티' 펀드도 현지에서 최상위권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 이 회사의 역외펀드(SICAV) 3개가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S&P로부터 A등급을 획득하고, 중국에서 직접 펀드를 운용하고 판매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등 2단계 해외진출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내 업체가 일부 국가에만 집중 진출해 출혈 경쟁을 자초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검은 머리 외국인(사실상 국내자본을 의미)만 상대하는 무늬만 해외진?이란 초창기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 관점에서 해외 진출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대세다.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무엇보다 제조업 위주의 제품 수출만으론 한계가 있으며, 결국은 금융수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김형태 원장은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기조에 진입했다"며 "경제 활력을 위해서는 사업기회 많은 해외시장에 대한 자본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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