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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여년 노동운동해 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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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여년 노동운동해 온 친구

입력
2009.11.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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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노동운동을 해온 친구를 최근 만났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내내 노동현장을 떠나지 않은 외골수 운동권이다. 실형 1년을 살았고 수 차례 구속과 수배생활을 거쳐 현재도 비정규직 노조를 위해 일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경력을 내세워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그는 한눈 팔지 않고 그 자리만 지켰다.

친구는 시골의 빈농집안 출신으로 여동생 셋을 둔 장남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운동권에 투신, 4학년때부터는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 사이 부친은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친구가 1년간 옥고를 치르고 나온 지 정확히 1주일 만에 부친은 세상을 뜨셨다. 6년간 병석에 누워 이제나 저제나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확인한 직후 눈을 감으신 것이다.

그와는 30년 지기이지만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터라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먼저 친구가 집안의 기대를 저버린 채 험한 길을 자처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농촌의 현실을 보며 어린 눈에도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았어. 누군가는 그걸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

정말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였다. 소주 잔이 수 차례 돈 다음 어느 새 반백이 돼버린 머리칼과 깊게 팬 이마 주름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확히 23년간 노동현장에서 일해왔는데 성과를 꼽는다면 뭐지?""글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스스로 권익을 지킬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라고 할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귀족노조가 생겨났고 또 다른 차별 받는 노동자들만 양산한 거 아냐?""맞아. 그러나 그건 일부지.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친 김에 최근 노정간 핫 이슈인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도 꺼냈다. "정부가 추진하는 두 사안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것인 데 노조가 총파업을 앞세워 반대하고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건 너무 하지 않은가? 외국 기업체가 오고 싶어도 노조 때문에 돌아가버린다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지. 프랑스나 이탈리아도 노조가 강하지만 생산성도 높고 잘 살잖아. 정부와 노조가 맞서고 있는 두 이슈도 타협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예컨대 복수노조만 해도 그렇지. 과반수인 노조가 무조건 대표성을 갖는 게 아니고 노조원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하면 되잖아. 하지만 전임자 임금 금지는 해외처럼 산별노조가 정착된 곳과 우리의 현실은 다르지. 우리나라에서는 전임자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순간 영세한 노조는 무너지고 말아. 그러니 이것을 노조 말살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친구는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현장 중심의 시각이 뚜렷했다. 노동운동은 이제 시민운동으로 봐야 하고 노동자가 잘 살고 대우 받아야 결국 국가도 발전하며, 역설적으로 노조가 강해야 경영자의 독단을 막아서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일면 이해가 가기도 했으나 오늘날 노정 갈등에 대해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벌이는 싸움처럼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가 파할 무렵 그의 말에서 어슴푸레 희망도 읽었다. "우리 사회가 이젠 많이 성숙했잖아. 이번 갈등도 성장통으로 생각해. 중요한 건 노와 정이 싸우는 과정에서도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지."

최진환 정책사회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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