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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24>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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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24>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입력
2009.11.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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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시내 호텔에서 열렸던 모임에 참석해 함께 한 사람들과 다 같이 건배를 하는 중 흥미로운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자리에는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와인으로 건배를 하는데, 이 날은 그 와인이 있어야 될 자리를 막걸리가 차지했다.

최근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나도 사람들과 술자리를 나누게 되면 으레 막걸리를 한 잔 하자고 부추기던 터라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반가움에도 불구하고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막걸리가 담긴 잔이었다. 호텔에 막걸리 잔이 있을 리 만무하고 평소 준비하던 대로 유리로 된 반짝이는 와인잔만 테이블에 놓였기 때문에 그 와인잔에 막걸리를 따라서 건배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날을 계기로 꼭 막걸리와 어울리는 우리의 맛과 향을 담아낼 수 있는 잔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가 일본 음식점이나 술집을 방문해서 요리와 술을 시키면 음식들은 어김없이 일본에서 들여온 그릇과 잔에 준비돼 나온다. 그릇뿐만이 아니라 식당을 장식한 인테리어와 소품들도 마찬가지다. '일본 음식은 일본 그릇에 담아야 제대로다'라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일본은 이미 음식을 단순히 요리 하나만이 아니라 그릇과 젓가락 등 소품까지 한데 묶어 상품성 있게 포장시켜 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음식을 통해 그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우리 현실 깊숙이 파고든 것이다.

최근 막걸리뿐만 아니라 우리 한식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막걸리처럼 여기서도 담아 내는 문화가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담아 내느냐에 따라 눈과 코와 입이 전하는 맛과 향이 다르게 된다. 그만큼 담아 내는 일이 담긴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음식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내가 패션 이외에도 이처럼 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전부터다. 이런 것에 관한 디자인을 나는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이라고 말해 왔는데, 디자이너의 감성으로 내가 만든 커피잔에 좋아하는 커피향을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잠을 자며 하루를 마치는 상상.

그래서 1993년 이런 상상을 현실에서 펼쳐보기 위해 '이상봉 아트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스포츠웨어서부터 가구, 그릇까지 망라하는 생활 디자인 제품들을 제작해 판매했다. 디자이너와 모든 것을 호흡할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 내 의도였다.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스토리를 일상생활 속에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는 패션만 하더라도 아직 라이프스타일이란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으로 때 이른 발상이었다. 한마디로 시기상조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이런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당시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 일은 지금 나에게 이와 관련한 작업들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우리를 둘러싼 삶이 곧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구두 가방 의류뿐만 아니라, 컴퓨터 자동차 건물까지 디자인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그리고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이런 디자인의 중요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기술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는 디자인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는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최근 들어 이런 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최근의 작업들은 이전 '이상봉 아트컬렉션'의 실패를 만회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어 달라진 우리 생활을 실감하고 있다.

LG전자의 샤인폰, 금호 리첸시아 아파트, 이마트 침구류, 행남자기의 도자기, 프랭클린 다이어리, KT&G의 수출용 담배와 경주용 자동차 A1까지 많은 기업들의 도움으로 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기자들이 이 같은 나의 작업들에 대해 '외유'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내 답은 언제다 '그렇지 않다'이다. 커피잔과 휴대폰이나 가구도 패션의 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라이프스타일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그리고 이제는 감성의 시대로 변화고 있어 패션의 역할이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라면 모든 디자인은 패션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서 영역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영역이든지 디자인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되도록 이런 감성들을 '우리 것'으로 담아 내고 싶다. 너무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동안 근접해 있어 마치 공기처럼 그 아름다움을 실감하며 살고 있지 못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현대 생활에서 다시 음미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디자인에는 한글이 들어가고 묵이 번지는 그래픽을 담기도 한다.

일본 문화가 음식을 통해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드는 것처럼 최근 유행처럼 일고 있는 외국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생활 깊은 곳까지 스며들고 있다.

예를 들면 30대 독신녀들의 라이프를 다룬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보여주는 뉴욕 여성들의 가공된 일상은 세계의 실제적 일상이 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케이블TV 기반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는 그 수용 속도가 더욱 빠른 상황이다.

대장금을 비롯한 우리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한류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바람을 몰고 왔지만 단순히 배우에만 의존하는 한류이기보다는 생활 문화 디자인을 통해 접근해 가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도 세계적 차원의 보편성을 확보해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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