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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고려청자 고가 매입' 공방에 피멍드는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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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 고려청자 고가 매입' 공방에 피멍드는 민심

입력
2009.11.1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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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에 가면 어디서든 '고려청자'의 흔적을 만난다. 거리(청자 가로등)에서, 식당(청자 식기)에서, 하다못해 선술집에서도 청자 막걸리잔으로 목을 축이며 비취색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강진에서 고려청자 한 두 점 없는 집은 없을 거시요." "아, 우리 집엔 개밥그릇도 청자랑께." 이런 우스갯소리가 우습게 들리지 않는 곳이다.

그만큼 청자 사랑과 자부심이 남다른 강진 사람들이 요즘 청자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강진군이 1억원 정도 하는 고려청자 두 점을 10억원씩 주고 샀다"는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의 발언으로 촉발된 감정가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고려청자의 땅'이라는 명예와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17일 오후 대구면 사당리 청자촌에서 만난 주민들은 "도대체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강진청자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경진(49)씨는 "성 의원의 의혹 제기 이후 청자 가격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생활자기 등 주문이 끊겨 판매량이 30% 이상 줄었다"며 "고가품의 경우 아예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진군의 청자 고가 매입 의혹이 터진 것은 지난달 5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성 의원이 "감정위원들이 소장자와 짜고 감정가격을 부풀린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성 의원은 강진군 청자박물관이 2007년과 2009년 각각 10억원에 사들여 전시하고 있는 '청자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모양 주전자'와 '청자상감 모란무늬 정병'은 시가 8,000만~9,000만원대로 추정된다며 고미술품 유통상인들 단체인 한국고미술협회 김모 회장의 감정소견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국보급 청자를 확보했다"며 자랑하던 강진군은 발칵 뒤집혔다. 주민들 사이에는 "군수와 감정위원들이 청자 감정가격을 뻥튀기해 돈을 나눠 먹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난무했다.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선 군은 당시 원소장자의 판매 의뢰를 받은 전문가가 감정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감정위원 선정 과정의 잘못을 확인, 담당 직원을 3개월 감봉 조치했다.

이어 당시 감정위원 6명과 원소장자 등 8명을 사기죄 등으로 검찰에 고소하고 재감정을 실시했다. 청자 구입을 둘러싼 의혹을 털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가격 감정 논란은 강진군과 성 의원측간 '감정(感情) 싸움'으로 번졌다. 지난달 19일 재감정에 참여한 감정위원 4명의 견해가 2대2로 엇갈리자, 군이 "성 의원과 고미술협회장, (성 의원 측 주장에 동조한) 일부 재감정 위원이 (재감정에 앞서) 사전 공모한 혐의가 있다"며 재감정 위원 2명을 추가 고소키로 한 것이다.

특히 성 의원 측이 사과를 요구하는 황주홍 강진군수에게 "그동안 강진군을 선의의 피해자로 봤는데 이제부터 적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주민들이 성 의원을 항의 방문하는 등 감정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강진군 관계자는 "성 의원 측이 실물이 아닌 사진(도록)만 보고 감정가격을 추정한데다 매입 당시 감정위원 3명이 친하다고 추정하는 등 근거가 미약한 의혹을 제기해 강진군과 군민들의 명예를 훼손해 놓고도 사과 한 마디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성 의원의 한 보좌관은 "뚜껑이 없고 손잡이도 새로 만들어 붙인 주전자가 10억원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사제지간 등으로 얽힌 최초 감정위원들이 가격 부풀리기를 하지는 않았는지 따져보자"며 "제발 재감정 위원들을 고소해 진실을 밝히자"고 맞받았다.

문제는 양측의 감정 싸움이 진실게임을 넘어 점점 고미술 유통업계와 학계, 학계 파벌들간 힘겨루기의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민심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고미술업계의 한 인사는 "고미술품의 시가 감정을 놓고 그동안 업계는 비전문가인 학자들이 가격 결정을 하는 데 불만이 있었고, 학계도 업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명품 둔갑 사례를 들어 이들의 감정 가격을 불신하는 등 갈등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번 강진청자 감정 논란도 이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강진에선 "한국고미술협회만 시가감정을 하는 법안을 만든다더라", "학계 인사로 구성된 최초 감정위원들을 밀어내기 위한 음모"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 "업계와 학계간 밥그릇 싸움에 강진청자와 강진군이 이용된 것 아니냐"고 새된 목소리를 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속만 끓이던 청자골 사람들도 그예 일을 낼 태세다. 이날 읍내에서 만난 주민 김정권(69)씨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고려청자가 필요하믄 억만금을 주고도 사는 것인디, 그것 가지고 뭐라고 글믄 안되지라. 결과론이지만, 국회의원이든, 逵壅?이번 일로 강진청자의 가치는 물론 군민들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짓을 한 것은 분명하지라. 주민들이 열불 나서 상주(성 의원 지역구)까지 쫓아가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난리요."

강진=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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