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로 관광사업이 시름에 빠져있는 때에 하필이면 외국 관광객들이 여럿 희생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안전불감증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론의 질책에 쫓긴 정책 담당자들은 "절대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또 새로운 규제를 만들 것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참사는 다시 발생할 것이다.
"재발 방지" 뻔한 다짐만
모든 사고의 발생은 '3E'즉, 공학적 체계(Engineering)와 교육수준(Education) 및 제도적 강제(Enforcement)의 세 가지 요소의 결함이나 부실에서 비롯된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소방ㆍ 방재 현실은 참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먼저 공학적 측면에서, 소방관련 체계는 관리체제의 불합리성이 큰 문제이다. 예를 들어, 소방시설을 감독하는 기술 인력은 그 지위 자체가 용역계약형식으로 시설주에게 예속되어 있다. 자칫 소임을 다하는 것이 오히려 고용주의 거부감을 조장하여 사업의 불이익을 초래한다. 또한 용역 수주조차도 과다 경쟁으로 인해 비상식적인 저가 계약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시장 실패'가 애초 예정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건물 인테리어 공사에 따른 변형은 건축법과 소방법의 규제와 감시를 받지 않는 사각 지대에 있다. 기존 소방법상의 다중이용업 규정만으로 실내사격장과 같은 신종 업소를 적절하게 감독하는 것도 어렵다.
교육적 측면에서도 예방대책은 허술하다. 소방안전 교육은 화재에 대처하는 방어능력을 향상시켜 준다. 그러나 실질적 교육체계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각급 학교에 안전교육 시간이 지정되어 있으나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물론, 성과측정 방법 등 기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현실이다.
제도적 측면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소방법을 비롯한 여러 규제 기준을 충족시키는 시설이라도 사용ㆍ 관리 상태에 따라 위험 정도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소방 선진국에서는 관할 소방서장이 현장을 확인한 뒤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안전조치 명령을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순찰을 통하여 현장 맞춤형 예방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불편과 비리 소지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예방 순찰을 위한 현장 접근을 금기로 여기고 있다. 소방법에서 소방서장의 조치명령권이 삭제된 지도 오래다.
소방 출동의 중요성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도로 곳곳에 "경제 위기로 인하여 18시 이후에는 주차단속을 하지 않습니다"는 안내문을 버젓이 내걸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이쯤 되면 뻔히 눈에 보이는 위험을 덮어버리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수동적 타성만 강화될 것이다.
소방 기초부터 마련해야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방안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의 기본업무를 언제까지나 희생과 헌신에 맡겨둘 수는 없다. 나라 위상에 걸맞은 소방ㆍ방재 안전국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커밍 아웃'을 해야 한다. 갖가지 이유로 덮어두고 외면한 위험요소를 모두 찾아내 바로잡아야 한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희생된 참사로 국가 이미지가 추락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법과 제도와 의식을 모두 바꾸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윤명오 한국화재소방학회 회장ㆍ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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