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진단해야 완치가 가능합니다."
현대차의 이수갑(43ㆍ품질관리5부)기술사는 자동차 검사에 관한한 '명의 허준'으로 통한다.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듣고도 사람으로 치면 소화기 계통의 문제점을 진단할 수 있는 내과 의사가 되기도 하고, 전자 계측을 통해 각종 부품의 위치를 조정하는 외과 의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를 단순히 '감'좋은 기술사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확한 전자제어 시스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차량 각 부분을 진단하는 최신 전자제어 장치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많은 차량 정비를 하다 보니 정확하고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차량 검진의 달인이 되기 까지 그는 크게 4단계를 거쳤다. 산업기사에서 기사, 자동차 기능장, 마침내 차량기술사까지 되는데 20년 넘게 걸렸다.
버스가 신기했던 산골소년 20년간 검차 외길
"꾸준함·컴퓨터 능력이 최고 반열 오른 지름길"
이수갑 기술사는 전형적인 노력형 인재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적도, 국제 기능대회는 물론 국내 대회에서도 메달을 딴 경험도 없다. 그의 각종 기능 자격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면서 취득한 것이다. 직장이 그의 학교가 됐고 주변 선배들이 그의 스승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하루에 한가지를 배우면 일년에 365개 지식을 갖게 된다'는 믿음으로 정비 서적과 씨름한 결과다.
그가 자동차 정비사가 된 사연은 단순했다. 버스가 신기했다고 한다. 그의 고향인 경남 함양군 구양리 등구 마을은 지리산 끝자락 마을로, 중학교 때까지 버스가 하루 딱 두 번 들어왔다. 집에서 학교까지 7㎞. 그러나 다른 친구들처럼 통학하면서 버스를 타 본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동네 다른 친구들도 사정이 비슷했죠. 다 못 살았으니까요. 어쩌다 버스를 타면 얼마나 신기했던 지 몰라요."
울산의 현대공고(현 현대정보과학고)는 그에게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 신기했던 자동차의 구조와 정비 기술을 배우면서 그는 졸업 후 자신의 미래가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차량정비와 검사 2급 자격증도 획득했다.
졸업과 동시에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할 것이라는 인생의 계획표는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말았다. 몇몇 대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연거푸 낙방했다. 한때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할까도 고민했다. 3년여간 방황했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울산으로 올라와 고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카인테리어 업체에서 일하며 오매불망 기회를 기다렸다. 드디어 현대정공에서 갤로퍼를 생산하면서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응시했고, 1991년 사원이 됐다.
이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기술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죠. 입사가 확정되면서 지금 아내가 된 당시 여자 친구에게도 어깨를 펼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입사해서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팠다. 검차부문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줄곧 이 분야에서만 근무했다. 검차는 자동차 정비를 위한 첫 단계. 진단을 정확하게 해야 처방을 제대로 할 수 있기에 정비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검차를 잘못할 경우, 엉뚱한 수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요즘 차는 하루가 다르게 전자 장치 비중이 높아져서 완벽하게 검사하는 것도 버겁다"며 "앞으로도 검차 부문에 매진, 세계 최고가 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그의 외길 선택에 대해 주변에서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탓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지금의 아내도 8년을 쫓아다닌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고. "뭐든 한번 시작하면 결론을 내야죠."
최고가 되겠다는 결심이 서자 그는 책 벌레가 됐다. 전자 제어 장치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된 일과를 마치고 책을 잡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만화책부터 시작했다. 낯선 책과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독서는 이제 온갖 수식으로 가득한 공학서적을 술술 읽어 갈 정도가 됐다. 휴일 독서실에서 책 속에서 습득한 지식을 다음날 현장에서 적용하다 보니 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지금도 이런 일과는 진행형이다.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꾸준함이다. 자질이 훌륭해 보이는 후배들이 곁눈질을 하다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서두르지 마시고 차근차근 한발 두발 오르다 보면 앞이 보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며 후배들에게 "답답하더라도 멈추지 말고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컴퓨터 능력. 컴퓨터를 모르고 차량 정비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최근 찾았던 치과 등 병원의 의료장비를 예로 들었다. "얼마 전 아이 때문에 치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다 컴퓨터로 일을 처리하더군요. 자동차도 똑같습니다. 제가 처음 기술을 배울 때만해도 눈으로 계측하고 정비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죠"라고 말했다.
다른 길을 걸었다면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본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 기술사는 "다시 태어나도 내 운명은 자동차와 관련된 일일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기능올림픽 금메달 최원석씨/ 스무살 꽃남, 20년뒤 '명장' 예약
노력형 기능 명장이 있는가 하면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들도 있다. 2009년 제 40회 국제기능올림픽 차체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원석(20ㆍ현대차 인재개발원)씨가 대표적이다. 얼굴은 꽃미남이지만 동료와 친구들 사이에서 '독종'으로 불린다. 한번 풀지 못한 과제는 밤을 새워서라도 다시 연습해 자기 것으로 익히는 습관 때문이다. 최씨는 고2 때부터 전국 기능대회에서 메달을 딸 정도로 일찍부터 국가대표 감으로 손꼽혔다.
그가 이번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차체부문은 사고 등으로 파손된 자동차의 수리 능력을 테스트한다. 판금과 용접 등 여러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테스트 시간도 3일에 걸쳐 20시간 이상 진행될 정도로 끈기도 필요하다. 이처럼 어려운 분야에서 최씨의 독종 근성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이번 기능 올림픽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차량 정비 부문은 일본과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분인데 큰 변수 중에 하나가 시험 차종이다. 통상 차종은 대회 6개월 전에 정해지는데 이번 대회는 대회 3개월을 앞두고서야 차종이 일본 도요타의 코롤라로 정해졌다. 당연히 일본 선수들에게 유리했던 것. 하지만 현대차는 국내에 없는 코롤라를 긴급 공수, 최씨의 기술 연마를 위해 아낌없이 뒷바라지했다. 최씨는 밤을 새워가며 연습에 몰두, 금메달로 이를 보답했다.
최씨를 지도한 정창환 부장(현대차 인재개발원)은 "원석이의 장점은 끈기와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젊은 그에게 어디서 이런 '끈기'와 '도전'정신이 나왔을까? 바로 어머니다. 편모 슬하에서 큰 최씨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최씨의 말이 빨라 졌다. "경주에서 최고로 맛있는 백반 집을 운영하는 어머니야 말로 금메달 감"이라며 자랑이다. 합숙소에 찾아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내놓고는 아들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서는 어머님이 있었기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최씨는 장래 희망에 대해 "일단은 배운 기술을 일선 서비스센터에서 충분히 적용해 보는 것"이라며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기술을 연마해 20년, 30년 뒤에 명장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 현대차 인재개발원
'글로벌 5' 진입을 앞두고 있는 현대차는 기술을 우대하는 사풍을 갖고 있다. 이는 품질 경영을 최우선시 하는 정몽구 회장의 신념에 기인한다. 그 결과 올해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차체수리, 도장, 정비 등 3개 부분에서 직원 3명이 메달을 획득했다. 현대차는 이들에 대해 포상금과 경력2년 인정을 줘 직원들의 기술연마를 고취시키고 있다.
인개개발원은 현대차 기술 교육의 산실이다. 현대ㆍ기아차 애프터서비스 부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교육을 하고 있다. 인도, 중국 등 해외 현지 공장의 외국인들도 이곳에서 현대의 기술을 익힌다. 인력개발원은 또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도록 인터넷 교육 'e-learning'도 함께 하고 있다. 또 일선 협력 정비소인 현대차의 Blue 서비스, 기아차의 Q서비스 가맹점인 협력사 직원들을 대상으로도 각종 신기술 관련 교육을 실시, '상생 기술 협력'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대ㆍ기아차는 전국 자동차 관련 학과가 있는 12개 대학, 15개 고교와 산학협력을 맺고,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차량 및 교보재를 지원하고, 기술 교육 및 학생들이 현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매년 연수원으로 소집해 교육을 진행 중이다.
또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기능장 자격 취득자에 대해서 각종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기능장 자격을 취득하면 포상과 함께 승진연한을 1년 가산해주고 있으며, 8개 대학과 협약을 맺고 현대기아자동차 특별반을 운영, 전문학사 학위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현대차에는 518명, 기아차는 301명의 기능장을 보유, 기술 현대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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