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지원금을 총괄하는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인문한국(HK) 연구지원사업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 심사에서 1위를 한 대학연구소를 석연찮은 이유로 종합심사에서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소 소장은 교수 시국선언을 주도하는 등 현 정부에 비판적 태도를 취해온 교수라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단측은 지난 8월 다른 지원사업에서도 전문가 심사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진보적 대학 연구소를 종합심사에서 탈락시켜 '비판 학자 길들이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최근'2009년 인문한국(HK) 지원사업' 심사 결과, 전국 69개 신청연구소 중 해외지역 연구분야의 소형과제 2곳, 중형과제 2곳, 인문연구분야 3곳 등 모두 7개 연구소를 지원 대상으로 예비 선정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인문한국(HK) 지원사업'은 한 연구소에 매년 수억원씩 최장 10년간 지원하는 인문ㆍ해외연구 부문 최대 학술지원사업이다. 예산이 증액되지 않는 한 신규 연구소 선정은 올해가 마지막이어서 대학간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본보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을 통해 확인한 채점 자료에 따르면, 모두 12곳이 신청한 해외 소형과제의 경우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제출한 '현대 독일의 시스템과 생활세계 연구'가 해당 분야 교수들로 구성된 전문가 심사에서 1차(전공)ㆍ2차(면접) 결과 85.32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다른 2곳이 이보다 낮은 80점대였으며 70점대가 2곳, 60점대 3곳이었다.
하지만 재단 임원 7명과 교육과학기술부 담당 과장으로 구성된 종합심사위원회는 독일연구소를 탈락시키고 차점자인 K대와 4위 P대 등 2개 대학 연구소를 예비 선정했다. K대 연구소는 중국, P대는 동남아시아를 연구 과제로 제출했다. 재단 관계자는 "최종 선정 절차가 남아있지만 이는 예비선정 연구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정부 훈령에 심사점수 외에 학문균형발전, 다양성 확보를 고려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단측이 전문가 심사 결과를 뒤집는 과정에서 신청 요강에 명시돼 있지 않은 기준을 추가로 적용한 것으로 드러나 "비전문가들에 의한 자의적 선정"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종합심사위원은 "신청요강에 명시된 '제3세계 우대' 외에 종합심사에서 '국가보다 권역 우대''대외관계 중요성' 등의 기준이 새롭게 적용됐다"며 "독일연구소 과제는 제3세계가 아니며 단일국가 연구인데다 대외적 중요성도 떨어져 탈락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HK사업 심사를 맡았던 한 교수는 "대학마다 사활을 거는 사업이라 전문가 심사위원단은 외부와 차단돼 합숙 심사를 한다"며 "이렇게 엄정하게 진행된 심사 결과를 두고 재단이 심사위원도 모르는 기준을 따로 적용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1차 전공심사 항목에 이미'연구지역 설정의 타당성'이 포함돼 있어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종합심사위원회가 연구지역 자체를 다시 문제 삼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독일연구소 소장인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내가) 민주화교수협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고, 특히 지난 6월 대학 중 가장 먼저 교수 시국선언을 주도했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도 지난 8월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2009 인문사회분야 대학 중점연구소 지원사업'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종합심사에서 탈락했다.
상지대, 성공회대, 한신대 등 3개 대학의 연합 연구소인 이곳은 전공 심사와 면접 심사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종합심사에서 자격 요건 미비를 이유로 탈락했다.
재단 관계자는 "대학 컨소시엄 형태의 연구소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신청요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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