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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이탈리아 폰테테라 극단 '햄릿-육신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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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이탈리아 폰테테라 극단 '햄릿-육신의 고요'

입력
2009.11.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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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를 아버지로 불러야 하는 운명 앞에 놓인 햄릿의 머릿속은 얼마나 복잡했을까? 그 현실을 인내해야만 하는 그의 머릿속은 출구 없는 방이다. 번민은 뇌리를 휘저으며 엄습한다. 그것은 불꽃 튀기는 검투의 현장이 아닐까?

2009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이탈리아 폰테테라 극단이 '햄릿_육신의 고요'를 펼쳐 보인 것은 14~15일이었다. 아르코예술극장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2009년 이탈리아비평가상을 탄 무대의 실체를 확인하는 행운을 누렸다.

음산한 조명과 음악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치라면 3X10m 크기의 철창이 전부다. 6명의 배우는 극중 배역을 마음대로 오가며 역할 바꾸기를 하지만, 객석을 교란시키지는 않는다. 왕, 왕비, 유령, 오필리어, 호레이쇼, 폴로니우스 등 원작의 인물들을 재빠르게 바꿔가며 연기한다. 연극팬이라면 어렴풋이라도 들어보았을, 너무나도 유명한 텍스트가 순서를 바꿔가며 창끝처럼 객석을 파고든다. 실제 잿빛 펜싱복만을 입고 나타나는 배우들은 공연 내내 무대 어디선가 검투 장면을 연기한다. 무대는 조명을 극도로 자제, 극장은 동굴속처럼 돼 버린다.

원작의 유명한 대사를 치는 배우들의 뜨거운 숨소리와 칼끼리 부딪치는 음향으로 무대는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긴장으로 터지기 직전이다. 이 무대가 객석에 제공하는 경험은 대단히 즉물적이다. 예컨대 개가한 햄릿의 모친이 삼촌과 정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난폭하기까지 하다. 쇳소리, 음산한 전자음 등이 그들을 에워싼다. 펜싱용 가면만이 얼굴의 전면에 드러나 있는 이들에게서 인간성을 읽을 수는 없다. 다만 숙명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유한성, 거기 대한 끝없는 질문만이 있을 뿐이다.

이 무대에서 주인공은 없다. 배우들은 셰익스피어에 의해 복제된 대상일 뿐이다. '햄릿'이 탈인격화, 배우라는 인간에 대한 감정이입의 가능성이 차단된 것이다. 복수심은 불보다 격렬하지만 햄릿의 육체는 끝없는 회의로 침묵한다는 연출자의 의도다.

우유부단한 햄릿의 육신은 그래서 고요하다. 무대는 그것이 인간이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두운 내면의 실상이라고 말한다.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의 독백 대목에서 연출가 로베르토 비치(60)는 햄릿이 원수인 삼촌과 맞닥뜨리게 해 극 속의 갈등을 정점으로 밀어부친다.

뒤엉킨 인간관계들이 난무하는 무대가 유일하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햄릿과 배우들 간의 진한 유대다. 가상과 욕망이 얽힌 21세기의 예술에서, 땀과 눈물을 가진 실체로서의 인간은 그렇게 긍정되고 있었다. 배우들이 철저한 신체 훈련을 거쳐 완성해 낸 결투 장면은 다시 한번, 연극은 몸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었다.

1974년 창단된 이 극단은 2002년 이래 유럽연합 산하 유럽현대예술진흥재단 등이 지원하는 축제의 주관 단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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